오피니언 사설

[사설] '거래 공정화 법안'은 규제 만능주의

백화점을 포함한 대형 유통업체들의 납품ㆍ입점업체에 대한 횡포를 막기 위한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은 규제 만능주의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포퓰리즘에 편승한 과잉규제로 유통산업 발전을 저해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법안을 통합한 이 법안의 골자는 대규모 유통업체가 정당한 이유 없이 납품업체에 상품대금 감액, 상품 반품, 판촉비 전가 등을 금지하자는 것이다. 더구나 시장원리에 어긋난 이 법안은 이렇다 할 공론화 과정도 없이 지난 9월7일 정무위원회를 통과해 법사위로 넘겨져 입법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실정이다. 그동안 대형 유통업체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입점업체에 대한 압력을 행사해온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형 백화점에 납품하는 73개 중소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업체가 백화점에 내는 판매수수료는 해외 명품업체들의 두 배에 가깝다. 여기에 중소 납품업체들이 추가로 부담하는 판촉사원 인건비와 인테리어 비용 등을 감안하면 거의 매출의 절반을 백화점이 가져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백화점들이 자생력을 갖춘 중소기업의 탄생을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백화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백화점을 비롯한 대형 유통업체의 생존을 위해서는 브랜드 파워에 따라 수수료에 차등을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래 공정화 법안'의 문제는 법안이 이러한 시장상황을 무시한 채 유통업체들을 '잠재적 범법자'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유통 관련 5개 단체가 "이 법안은 마치 시민에게 절도범 누명을 씌운 다음 누명을 벗으려면 시민이 스스로 무죄를 입증하라는 것과 같다"면서 국회에 법률안 제정을 반대하는 청원서를 낸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또 반품금지 조항은 매매취소나 환매 등의 형태로 모든 산업계에서 일반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통업체만 별도로 제재하는 것은 헌법의 평등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유망산업인 유통업을 옥죄는 '법률 만능주의'는 지양돼야 한다. 대형 유통업체들도 수수료를 합리적으로 책정, 투명하게 공개해 입점업체와 공생발전을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