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베스트셀러를 꿈꾼다. 베스트셀러는 무엇보다 내용이 중요하지만 경우에 따라 시대 흐름에 맞는 `코드`를 잘 잡으면 행운을 안을 수도 있다. 예림당의 경우 다양한 스테디셀러로 지속적인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 왔지만 사회흐름에 맞는 기획물로 낙양의 지가를 올린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입체 녹음테이프가 곁들여진 시청각동화 `이야기극장` 시리즈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예림당 이름은 서점가와 학부모, 어린이 독자들 사이에서 친숙하게 되었다. 그러자 다른 여러 출판사도 시리즈 이름만 달리해서 판형과 포장법까지 똑 같은 책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기아자동차에서 나온 봉고 승합차가 선풍적 인기를 누리면서 타사에서 나온 유사한 승합차도 다 `봉고`로 불리우듯 어느 출판사에서 나왔든 당시 테이프를 곁들인 시청각동화는 `이야기극장`으로 통할 만큼 수요는 가히 위력적이었다.
그렇다고 특허를 낸 것도 아니어서 왜 이야기극장을 베껴 먹느냐고 말할 수도 없어 최고의 질로 경쟁력을 높이면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어 모든 면에서 차별화 하기로 했다.
하지만 새로운 시리즈를 개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 나는 `정상에서 시작하면 이미 늦다. 잘 나가기 시작할 때 우리는 다른 걸 개발해야 한다`며 직원들을 독려하고 자나깨나 새로운 아이템 개발을 위해 고심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는 컬러 TV 보급이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안방 극장에서 시작된 컬러 혁명은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자동차 색상, 거리의 간판, 심지어 주택과 빌딩에까지 물결치기 시작했다.
특히 컬러 TV 속에서 만화영화는 어린이들에게는 마법과 다름 없었다. 이런 현상은 어린이 책에도 큰 변화를 몰고 왔다. 그림책은 말할 것도 없고 동화책의 표지며 그림이 화려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컬러가 아니면 독자에게 외면당하는 상황이 되었다. 예림당이 초기에 낸 저학년 2도 동화는 이미 급격한 내리막을 걷고 있었다. 상당기간 이런 변화의 과정을 눈여겨보면서 `컬러와 스피드`에 착안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스피디한 동영상이 어린이들을 TV 앞에 붙잡아놓고 있다면 동화책도 이런 현상에 발맞추어 보면 어떨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지면에 어떻게 동영상을 담을 수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움직이는 그림을 책에 담을 수 없다면 비슷한 대안이라도 찾아보자 하다가 내린 결론은 그림책도 아니면서 만화도 아닌, 그러면서 동화 내용에 충실하고 내용을 그림으로 더 많이 보여 주는 포맷이었다.
책을 펼치면 양면에 4~5컷의 그림이 이어지는 연속 스틸형 그림이 제공되는 동화책을 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시리즈의 이름도 가장 아름다운 색상의 대명사로 불리는 무지개의 이름을 따서 `무지개극장`으로 정했다.
이렇게 해서 초등 1학년에서 4학년까지는 무난히 볼 수 있는 새로운 시리즈가 탄생했다. 국판에 하드커버 형태였으며 이 역시 처음에는 독자들의 선호도를 고려해 명작동화로 시작해 전래동화 창작동화 위인전 등 시리즈를 다양하게 보완해 갔다.
1987년 이야기극장의 인기가 최고에 달했을 무렵 무지개 극장 시리즈를 선보이게 되었고 이야기극장만큼은 아니었지만 역시 큰 인기를 얻었다. 미디어의 변화 추세에서 잡아낸 행운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똑같게 주어진 기회 속에서 얻은 결과라는 점에서 그저 다가온 `행운`이라기 보다는 전 직원들과 함께 이루어낸 고심과 노력의 결실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무지개극장을 낼 때 역시 출판을 처음 시작할 때처럼 `좋은 책을 값싸게`를 표어로 내걸고 있던 터라 다른 출판사들로부터 항의도 많이 받았다. 예림당 때문에 정가를 올릴 수도 없고 정가를 올리자니 책이 안 팔릴까 봐 걱정이라는 것이다. 무지개 극장 시리즈는 10년 동안 약 700만부가 팔렸다.
<현상경기자 hs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