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신화' 과거에 안주…1년만에 주도권 빼앗겨
노키아·모토로라 가격경쟁력 무장 전방위 압박저가폰업체 고사위기·고가폰서도 점유율 밀려"하나만 뜨면…" 로또식 사고에 제살깎기 경쟁도
최광 기자 chk0112@sed.co.kr
지난 2002년부터 중국 시장에 앞다퉈 진출했던 세원텔레콤ㆍ텔슨전자ㆍ기가텔레콤 등 국내 중견 휴대폰업체들은 연쇄적으로 무너졌다. 이른바 ‘중국 쇼크’ 때문이다. 중국 업체들이 국내 휴대폰 기술을 빼내 경쟁력을 높인데다 때마침 덮친 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여파로 매출이 크게 줄어들면서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중국 쇼크는 마이너리거(중소업체)들의 문제였을 뿐이다.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대기업들은 여전히 세계시장을 주도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지금은 위기의 본질이 다르다. 이제는 그저 저가 휴대폰에 매달리는 중국 업체가 아니라 노키아 같은 글로벌 업체들이 저가에서 고가 제품에 이르기까지 전방위 압박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그래서 삼성전자ㆍLG전자 등 대기업들조차 긴장을 감추지 못한다.
◇세계를 휩쓰는 ‘레이저 쓰나미’=국내 업체들은 최근 세계 휴대폰 시장을 분석하면서 ‘레이저 쓰나미’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2004년까지만 해도 대기업들은 중고가(中高價) 시장, 중견업체들은 저가(低價) 시장에 주력했다. 메이저리그 및 마이너리그가 확연히 분리돼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고가 및 저가제품 시장에서 전방위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여기에 환율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국내 휴대폰업체들은 ‘매출부진, 수익성 악화’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됐다.
노키아와 모토로라는 경쟁업체들에 대한 압박을 갈수록 강화하고 있다. 노키아는 연초부터 “노키아와 모토로라를 제외한 어느 업체도 인수합병(M&A)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며 대규모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세계 휴대폰산업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지 못한 업체들의 퇴출을 유도하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시장구도를 재편하겠다는 뜻이다.
노키아와 모토로라는 일찍부터 초저가 휴대폰 생산을 염두에 두고 ▦생산라인 단순화 ▦부품 아웃소싱 ▦글로벌 생산기지 확보 등 전방위 노력을 펼쳐왔다. 이에 따라 이들의 생산원가가 크게 낮아지면서 높은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인도 등 신흥시장에 50달러도 되지 않는 초저가폰을 판매하면서 시장점유율을 크게 높였다. 결국 VK처럼 저가폰을 주로 생산하는 중소업체들은 중국 업체뿐 아니라 노키아와 모토로라 같은 골리앗과 싸움을 벌이게 됐다. 그러나 원가구조는 물론 브랜드파워에서도 상대가 될 수 없는 탓에 저가폰 생산업체는 고사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노키아ㆍ모토로라는 중고가 시장에서도 무시무시한 공세를 펼치고 있다. 노키아는 멀티미디어 기능을 강화한 N시리즈를 내세워 카메라폰 시장을 주도하고 있고 모토로라도 2004년부터 초슬림폰 레이저로 세계 슬림폰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로또’식 전략으로 일관=데릭 리도 아이서플라이 사장은 지난 5월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타깃 마케팅을 통해 높은 경영효율을 자랑하는 데 반해 한국 업체들은 ‘하나만 잘 팔리면 된다’는 안이한 인식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철저한 제품 기획과 마케팅을 통해 시장을 주도할 만한 제품을 만들어나가는 게 아니라 그저 히트제품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는 얘기다. 과거 세계시장을 휩쓴 카메라폰 신화에 취해 ‘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명확한 차별화를 통해 주도권을 잡기보다는 국내 업체들이 오히려 집안싸움을 벌이는 것도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국내 업체들은 모토로라가 선점한 ‘슬림폰’에 대적하기 위해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지출했지만 정작 슬림폰 시장에서 레이저의 위치는 요지부동이다. 해외 통신업체에 납품할 때도 국내 업체끼리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을 벌인다는 얘기도 끊이지 않는다.
휴대폰업계의 한 관계자는 “노키아와 모토로라에 시장 주도권을 뺏긴 상황이 계속된다면 수출 주력상품으로서 휴대폰의 위상은 크게 위축될 것”이라며 “세계시장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면 비상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입력시간 : 2006/07/07 1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