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워크아웃, 부실기업 연명도구로 전락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고 있다. 「회생 가능한 기업의 갱생」이라는 애초 목적에서 벗어나 대상기업을 단순히 연명시키기만 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상기업에 수천억원을 새로이 퍼붓다 보니 채권금융기관만 부실화하고 종국에는 금융기관 부실을 충당키 위해 국민 부담만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기관들도 기업을 회생시키기보다는 자기 회사의 부실채권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기 위한 이해다툼에 골몰, 대상기업의 워크아웃 플랜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상기업들도 뼈를 깎는 자구노력은 외면한 채 금융기관의 「선처」만 기다리고 있다. 워크아웃 제도를 이대로 끌고갈 경우 실패한 부도유예협약의 재판이 될 것이라는 걱정도 적지않다. 금융기관 관계자들은 더 늦기 전에 워크아웃 제도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 실정이다. ◇지지부진한 워크아웃=워크아웃 기업으로 선정된 곳 중 동아건설을 제외한 어떤 기업에 대해서도 워크아웃 플랜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거평과 고합이 기업 구조조정위원회에 회부된 데 이어 신호그룹도 채권단간 이해다툼 이 일고 있는 가운데 구조조정위원회로 넘어갈 공산이 커지고 있다. 이달까지 채권행사가 유예된 8개 기업도 지금 상황대로라면 플랜이 작동될지 여부를 알 수 없다. 채권단 관계자는 『동아건설도 국가적인 문제가 걸려 있어 통과됐을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워크아웃 대상 선정부터 잘못됐다=워크아웃 대상인 기업의 채권금융기관 임원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출자전환과 신규자금 지원, 이자감면 등을 통해 살아나지 않을 기업이 어디 있느냐』고 꼬집었다. 소규모의 이자유예와 신규자금 지원을 통해 회생할 수 있는 기업만 냉정하게 선정해야 한다는 비판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법정관리나 화의에 들어갔어야 할 기업이 엉뚱하게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됐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또 워크아웃 대상이 된 후에라도 실사결과가 좋지 않아 회생이 쉽지 않을 경우 과감하게 법정관리로 바꾸는 등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회생가치가 없는 기업에 대해서도 일단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되면 해당 기업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게 은행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워크아웃의 본질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금융기관의 추가손실만 커진다=주채권은행들이 워크아웃 플랜으로 내놓는 것들은 천편일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출자전환과 신규 자금지원, 이자유예(감면) 등. 대상기업에 대한 미래가치를 냉정하게 판단, 적정한 지원규모를 산출해야 함에도 무조건 부르는 게 수천억원이다. 결국 정부의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된 은행은 차치하더라도 종합금융사 등 2금융권의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다. 자신들도 유동성 부족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워크아웃 기업에 무조건 돈만 쏟아부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 밑빠진 독에 물을 부어봤자 채권이 무담보이기 때문에 상환순위에서는 항상 밀린다. 자연히 부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이는 언젠가는 국민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은행들도 마찬가지. 주채권은행이야 부실채권의 「현재화」(現在化)를 꺼리다 보니 출자전환, 신규 자금지원, 이자감면 등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나머지 은행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가기 쉽다는 것이다. ◇워크아웃의 표준이 없다=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법정관리나 화의는 나름대로의 표준이 있다. 하지만 워크아웃은 사실상 아무런 표준안이 없다』고 주장했다. 채권금융단 회의에 들어서면 회사갱생을 위한 지원규모 등에는 관심이 없고 이해다툼에만 골몰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염불(본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이해관계)에만 달려든다』는 것. 이해다툼을 조정하는 기관이 없기 때문에 금융기관의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 것도 이런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채권단 실무자는 이를 「금융기관의 직무 해태(懈怠)」라고 꼬집었다. 그는 워크아웃을 논의할 때마다 문제가 되는 담보와 무담보채권의 문제를 대표적인 예로 꼽는다. 기업마다 사정이 다르기는 하지만, 사전에 최소한 최대공약수의 모델을 산출하고 논란이 있을 때 이 모델을 꺼내면 되지 않느냐는 설명이다. ◇새로운 금경유착이 일어나고 있다=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기업이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되면 금융기관만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은 오히려 종전보다 더 좋아진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대상기업에 대한 경영권 박탈문제도 마찬가지.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경영권포기 각서를 받아놓더라도 비리를 캐지 않는 한 경영권을 빼앗을 수 있는 주체가 없다』고 단언했다. 분기별로 영업·생산부문을 모니터링, 문제가 있을 때 경영진을 퇴진시킨다는 복안이 고작이다. 초기단계에서 경영진을 쫓아내야 할 경우가 많은데도 현 경영진이 차라리 낫지 않느냐는 생각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두고 『금경(金經) 유착의 새로운 전형』이라고 못박았다. 기업들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로비를 일삼고 있다는 불신론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 모 종금사 임원은 『회사 몇개 팔고 사람 좀 자르는 게 기업이 내놓는 유일한 자구책』이라고 말한다. 기업이 부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전혀 지지 않으려는 「도덕적 해이」 현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부도유예협약의 재판이 될 수 있다=부실기업을 회생시키려면 금융권이 공동보조를 취해야 한다. 기업주에게도 모든것을 내놓겠다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 금융권이 이해다툼에만 골몰하고 기업은 경영권 수호에 정신을 파는 한 워크아웃은 성공할 수 없다. 대상기업과 금융기관, 이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한배를 타지 않는 한 워크아웃이 실패한 부도유예협약의 전철을 밟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시중은행의 한 워크아웃 팀장의 말처럼 워크아웃에 대한 전반적인 재조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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