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8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북한을 찾아가면서부터 지금까지 만 16년 동안 쌓인 신뢰관계를 본다면 두말할 나위 없는 ‘특별관계’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특별관계가 ‘거래관계’로 전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니 벌써 양측의 관계는 변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동안은 서로를 도와주려던 자세였다면 지금은 관광객 통행료를 놓고 다투고 있으며 이런저런 것들을 꼬투리삼아 약속을 파기하고 있다. 북측은 심지어 현대가 아닌 제3의 기업과 손을 잡는 방안을 타진할 정도로 발빠른 변신을 하고 있다. 김영윤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은 이와 관련, “(북측의 변화가 드러난)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강산관광은 지난해부터 수익이 나오기 시작했다. 농사로 치면 15년 동안 김을 매고 밭을 갈아 이제부터 추수하기 시작한 양상이다. 특히 육로관광을 열고 나니 북측에서 우려했던 ‘체제 불안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전체를 다시 조망해보자면 현대는 금강산관광사업을 통해 북한을 두드린 지 15년 만에 드디어 ‘달러를 본격적으로 만들어내는 금맥’에 닿았다. 하지만 북한의 입장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관광객이 얼마나 들어오느냐는 숫자에 수익이 철저하게 연동돼 있다. 개성관광에 대해 북한이 금강산의 두 배에 달하는 관광객 통행료를 요구하는 것이나 직접 매대나 식당을 운영하겠다는 것 등은 ‘체제 위험이 극히 미미하면서도 관광수익이 보장된 사업의 과실’을 당사자가 모두 갖겠다는 의미다. 북한이 개성 시범관광을 전격적으로 수용한 것도 되짚어볼 대목이다. 당초 북측은 개성관광 시행조건으로 ‘개성공단에서의 대규모 수익 확인, 개성시내 보안조치 후’라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두 가지 전제조건이 모두 무시된 채 개성관광이 이뤄졌다. 이는 북한측이 달러수익을 위해서는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면 그토록 의리를 부르짖는 북한이지만 속내에선 현대그룹을 이미 ‘동반자’의 자격에서 밀어낸 듯하다. 최근 우리 정부와 북한의 관계가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다는 점도 ‘현대ㆍ북한’간의 의리관계를 거래관계로 바꿔놓는 조건이거나 환경이다. 그동안 남한 자본과의 접점은 철저하게 현대가 유일무이한 창구로 작동했다. 하지만 환경이 변하면서 ‘현대라는 유일 접점’보다는 ‘현대를 포함한 다중 접점’ 가능성이 커졌다.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현대가 북한측과 보다 구체적인 대북사업 합의를 새로 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조언한다. 또한 현대가 대북사업 개발을 독점하고 있다는 인식을 하루빨리 해소시키고 국내 다른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포함한 모든 컨소시엄과도 대승적인 자세에서 손잡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북한이 변했으니 현대도 변해야 한다는 것. 이 경우 현대-북한간의 대북사업 전 과정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칫 북한이 변덕을 부릴 경우 국민적 호응을 바탕으로 정부 차원의 대응을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김규철 남북포럼 대표는 “남북관광교류사업은 투명성ㆍ공공성ㆍ공정성, 그리고 사업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국민적인 이해와 합의가 가능해질 때 정상궤도를 달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