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서면의결권 첫시행 '비상'
안건·인사명단등 주주에 사전통보
업무혼란·인사잡음등 부작용 우려
조흥ㆍ한빛ㆍ서울ㆍ외환 등 공적자금 투입은행을 포함한 시중은행들이 올 정기 주총부터 처음 적용되는 '서면에 의한 의결권 행사' 제도의 실시를 앞두고 초비상에 걸렸다.
서면 의결권 행사제도란 주주가 주주총회에 출석하지 않고도 서면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이를 도입한 은행들은 주총 약 20일 전까지 모든 주주들에게 주총 안건(의안 설명서)과 투표용지(의결권 행사 서면자료)를 보내야 한다.
2월 말부터 3월 중순에 걸쳐 일제히 정기 주총을 개최할 예정인 은행권은 이에 따라 최소 주총 3주일 전에 의결안건을 확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 서면통보에 따른 막대한 인력 및 시간ㆍ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등 예년과는 달리 큰 혼란을 겪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가장 민감한 사안 중 하나인 임원인사와 관련해서도 사전에 퇴임예정 임원 및 임원 후보자를 통보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공백 및 임원 후보자간 갈등 등 잡음이 불거질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서면 의결권 행사제도를 적용하면=정기 주총이 열리기도 훨씬 전에 퇴임하는 임원명단이 공개되고 그 자리를 채우게 될 후보자까지 사전에 알려지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사전 통보시한에 맞춰 늦어도 주총 20일 전에 후보를 확정해야 하기 때문에 퇴임하는 임원과 임원 후보자들을 미리 공개해야 한다. 이 경우 퇴임하는 임원들이 업무를 계속 추진하는 데 따른 업무공백이 불가피하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임원 후보를 미리 공시할 경우 흑색비방 등으로 인사잡음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은행들은 또한 주총 소집 통지일 약 일주일 전(주총 약 20일 전)까지 주총 안건을 확정해야 하고 특히 소액 주주들에게까지 주총 안건을 통지할 경우 작업에 투입되는 인력과 비용이 엄청날 것으로 우려된다. 만일 의결 안건이 수정돼 통과될 경우 서면투표자는 모두 기권처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주의 의사가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
◇은행들 '정관 재개정 필요'=이같은 문제가 당장 발등의 불로 떨어진 곳들은 지난해 사실상의 금감원 지시로 이 제도를 도입했던 공적자금 투입은행. 다른 은행 중에서는 주택은행이 자율적으로 이를 채택했고 신한은행은 이사회에서 '선택적용'할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했다. 이중 조흥ㆍ외환은행 외에 한빛ㆍ서울은행은 정부가 단독 주주이기 때문에 올해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향후 정부 지분이 매각되면 같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은행권에서는 일단 서면 의결권 행사에 따른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분 1% 미만 소액 주주들에게는 사전 통보를 생략할 수 있도록 정관에 명시함으로써 분쟁의 소지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주총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 중 하나인 임원인사와 관련한 혼란 및 업무차질을 막기 위해 서면결의 안건을 차별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진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