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인터뷰] 이영남 이지디지털 사장·여성벤터기업협회 회장

"저는 골프연습장보다는 필드에 직접 나가는 걸 훨씬 좋아합니다"가장 성공한 여성벤처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이영남(45) 이지디지털 사장 및 여성벤처기업협회 회장은 스코어가 안좋아 골프장에서 친구들에게 타박을 받을 지언정 아무런 변화없이 똑 같은 샷을 반복하는 골프연습장은 질색이다. 항상 변화와 모험을 즐기는 이 사장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단면. 이 사장은 부산에서 5녀 1남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언니들과 동생들 틈바구니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어요.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 눈길을 끌어보려 했습니다. 일종의 서바이벌게임 이었죠" 집안 내의 서바이벌게임으로 단련(?)된 그녀는 학창시절에 누구도 생각지 못한 행동으로 눈길을 끌며 선생님과 친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초등학교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당시 부반장이었던 저는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을 저희 반으로 모셔서 감사를 드리는 이벤트를 마련했어요. 대히트였죠" 이 사장은 동부산대를 졸업하고 81년 광덕물산에 입사해 당시 적자행진을 계속하던 계측기사업부에 배치됐다. 그 인연은 지난해 계측기제조로 255억원의 매출을 올려 제조벤처로 우뚝 선 이지디지탈로 이어지는 단초가 된다. "당시 계측기사업부는 적자행진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것이 더 흥미로웠죠. 저로 인해 그 부서가 흑자를 내고 중심사업부로 성장한다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이 되겠습니까?" 결국 이 사장은 만년적자였던 계측기사업부를 흑자전환시켰고, 조석훈 광덕물산 회장은 그녀에게 사장직을 제의했다. 이 사장은 사내연애로 결혼에 골인한 엔지니어출신 남편이 공장장을 맡고 자신은 사장직을 맡아 88년 서현전자를 설립했다. 새옹지마라 했던가. 잘 나가던 광덕물산이 93년 유동성문제로 부도를 맞았다. "그때는 정말 막막했습니다. 저한테 몸을 피하라는 주변의 말도 참 많았죠. 하지만 전 정도를 택했습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경영만이 최선이라 생각했습니다. 당시 주거래은행이던 기업은행담당자에게 부도 이틀 전 전화를 걸어 부도가 날 것이니 대비하고 직원들 월급만큼은 꼭 지급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은행을 감동시켜 상황을 역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기업은행 담당자는 직접 회사를 찾아와 이 사장과 함께 회생방안을 논의했고, 한달간의 노고 끝에 자금대출과 광덕물산의 수주물량 인도를 통해 서현전자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광덕물산이 수주한 물량을 서현전자가 받으려고 했지만 임원진들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능력은 있지만 왠지 까탈스러운여사장에게 그들은 정말 냉정했어요. 임원을 만나려고 몇 차례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만 받고 돌아온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죠"이 사장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글썽거린다며 "하지만 그런 현장경험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기업으로서 사형선고인 부도 직전까지 갔었던 경험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을 심어줬고, 신뢰와 정도경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체험했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힘든 기간을 극복한 서현전자는 99년 상호를 이지디지탈로 바꾸고 광통신계측기 전문제조 업체로 거듭났다. 이후 뛰어난 기술력과 신뢰경영으로 광전자장비, 전자제어기기, 통신장비 등을 제조해 99년 140억원, 2000년 255억원, 올해 예상매출 3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98년 수출유망중소기업으로 선정됐고 99년에는 LG이노텍 범용계측기사업부를 인수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미국 ADC텔레콤사와 기술이전 및 마케팅제휴를 맺으면서 1,200만 달러를 투자유치해 벤처업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 사장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 받아 98년 모범여성경제인 대통령표창, 지난해 벤처기업대상 철탑 산업훈장 등을 받았으며 올해 2월에는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에도 취임했다. 이 같은 성공의 비결에 대해 그녀는 세가지를 꼽았다. "첫째, 실패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실패에 대한 대책만 있다면 실패는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또 변화란 즐거운 것이죠. 둘째, 미래를 정확히 꿰뚫은 눈과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한 기업의 CEO는 회사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식견과 판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아울러 굳건한 믿음을 줄 수 있는 신뢰가 바탕이 되야 합니다. 셋째, 회사의 역량을 최대화 할 수 있도록 직원들이 화합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았을까. 가정살림과 사업을 어떻게 조화할 수 있었을까. "시댁식구들을 내편으로 만들면 됩니다. 저는 남편을 1년간 포기하고 시어머니께 맡겼죠. 그리고 아이를 출산한 후에는 손자를 드리고 남편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요즘 시부모님을 모시지 않으려는 젊은 여성들이 많은데 참 안타깝습니다. 시댁식구는 든든한 후원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성벤처기업협회장 다운 면모. 최근 이 사장은 기업가의 사회적책임에 대해 큰 무게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기업인으로서 벤치마킹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를 위해 어떤 일이 있어도 투명한 정도경영을 통해 경쟁력있는 회사를 만들 것입니다. 또 여성들을 위해 육아인프라를 비롯한 기업환경구축에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김민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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