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한국을 이끄는 50인의 경영인] 김현중 한화건설 사장

"사장실은 열려있다" 스킨십 경영<br>직원들 아이디어 적극 반영 유화 플랜트등 해외영업 확대


“사장실은 항상 열려있다.” 김현중(사진) 한화건설 사장이 ‘스킨십 경영’을 강조하며 직원들을 만날 때 마다 항상 하는 말이다. 김 사장은 직원들과의 의사소통에 적극적이다. 신입 사원들과 경력 사원들은 입사 후 1년이 지나면 반드시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된다. 이 자리에서 직원들은 입사 후 회사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을 솔직히 털어놓고 개선점과 아이디어는 바로 업무에 적용되도록 지시가 떨어진다. 이런 취지로 지난해부터는 ‘부서별 간담회’도 진행되고 있다. 회의에 참석하는 모든 직원은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해 직원들의 생각을 경영에 반영하고 있으며 매년 5월 열리는 한마음 체육대회에는 전 직원이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노래자랑대회’를 마련한다. 한화건설은 또 지난 2006년부터 매년 ‘아빠회사 방문하기 행사’를 마련, 직원 가족들을 회사로 초청하고 있다. 이는 ‘가화만사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김 사장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김 사장은 이처럼 스킨십 경영을 강조하면서도 일에서만큼은 완벽을 추구한다. 김 사장은 2002년 ‘꿈에 그린’ 브랜드를 선보인 이후 5년 만에 전국 각지에 3만여 가구를 공급했다. 마포 오벨리스크, 잠실 갤러리아 팰리스, 서울숲 갤러리아 포레 등 주상복합아파트와 인천 논현지구 1만2,000여 가구의 에코메트로 등이 김 사장의 손을 거친 대표작이다. 김 사장은 갤러리아 포레 착공식에서 “건축은 예술을 넘어 역사가 되곤 한다”며 “역사를 창조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책임감을 지니고 국내 최고의 랜드마크로 건설하자”고 당부할 정도로 프로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같은 프로정신으로 김 사장은 한화건설에 취임한 후 외형을 4배 넘게 키워냈다. 김 사장은 2000년 ㈜한화의 건설 부문 CEO로 영입됐다. 건설 부문은 2002년 한화건설로 독립한 이후 연평균 수주가 평균 30%씩 늘어 취임당시 4,000억원 대에 불과했던 수주는 2002년 1조원에서 2005년 2조원, 2007년 3조원으로 늘어났다. 시공능력평가도 취임 당시 35위에서 14위로 올라섰고 올해 12위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 사장은 “한번 정한 목표는 전 임직원이 일치 단결해서 반드시 달성할 수 있도록 역점을 두어왔다”며 “이를 위해 목표와 비전을 전 임직원들이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또 “지금까지 건설이 하드웨어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소프트 웨어가 중요하다”며 “단순 공사 수주를 벗어나 핵심 기술력을 바탕으로 프로젝트 기획부터 타당성 분석, 사업구조 개발, 자금조달, 설계, 시공, 사후관리까지 종합 서비스를 제공해 선진 디벨로퍼 건설사로 성장해 나가자”고 임직원을 독려했다. 한화건설은 올해를 글로벌 건설사로서의 초석을 다지는 해로 삼고 석유화학 플랜트 및 개발 사업 등과 같은 해외 영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한화건설은 석유화학 플랜트 공사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중동, 사우디, 오만, 카자흐스탄 등 전략 거점지역을 중심으로 신규수주에 나서고있으며 캐나다, 알제리 등 북미나 아프리카지역으로 해외부동산 개발 사업을 다각화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특히 해외 사업은 김 사장이 직접 진두 지휘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이런 노력 덕에 작년 말부터 사우디 마덴의 발전ㆍ담수 플랜트, 사우디 에틸렌, 베트남 개발 사업 등과 같은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한화건설은 2011년까지 해외 매출 비중을 전체의 40%로 높여 글로벌 건설사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김현중 사장은 김현중 한화건설 사장은 30여 년간 건설현장에만 몸담아온 전형적인 ‘건설맨’으로 건축현장기사에서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엔지니어 출신의 CEO’다. 서울대에서 건축을 전공한 김 사장은 한때 법관의 꿈을 키우기도 했으나 이과 진학자가 많았던 집안 내력에 따라 공대를 선택했다. ROTC로 군대를 마치고 76년 대우건설에 입사하면서 건설업계로 뛰어들었다. 김 사장은 당시 호텔로는 최대 규모였던 을지로 롯데호텔 공사,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 신축공사에 참여했다. 김 사장은 지금도 “두 사람이 교대로 철야작업을 하는 고된 업무였지만 아내가 첫 애를 낳은 다음날도 공사현장으로 달려나갈 정도로 열심히 일했었다”고 말한다. 김 사장은 업무 능력을 인정 받아 1981년엔 해외건설 현장에 파견돼 해외 업무만 20년 이상을 담당했다. 리비아에서는 1만3,000가구의 주택과 2,000동의 학교를 지었고 미국 트럼프월드를 비롯해 선진 주택 1만여 가구 건설에도 참여했다. 1984년 영국 런던으로 파견된 김 사장은 해외공사 자재구매를 맡았고, 3년 뒤 귀국해서는 13년 동안 해외부동산 개발사업을 맡아 지구촌을 누볐다. 김 사장은 당시 업무 목적으로만 가본 국가가 50여 개에 이르고 총 비행 거리가 300만 마일에 이를 정도였다. 지금의 유창한 영어실력은 그때 다져진 것이다. ▦1950년 인천 강화 출생 ▦1974년 서울대 공업교육학과 졸업 ▦1976년 대우건설 입사 ▦1989년 해외개발사업본부장 ▦2000년 ㈜한화 건설부문 대표이사 ▦2002년 한화건설 대표이사 사장 ◇ 경영원칙 ▦스킨십을 강화해 직원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게 한다 ▦집이 화목해야 일이 잘된다. 직원 가족들을 챙겨라 ▦한번 정한 목표는 반드시 달성한다 ▦목표와 비전은 직원과 공유한다
"기업 경영의 기본은 사람"

아무리 바빠도 신입사원 면접에 반드시 참여
"기업 경영의 기본은 사람입니다. 공장이 없는 건설업의 특성상 결국 사람이 재산이고 경쟁력입니다." 김현중 사장의 인재론이다. 한화건설은 매년 40~50명의 신입사원을 뽑지만 김현중 사장은 아무리 바빠도 신입사원 면접에 반드시 참석한다. 대학 리쿠르팅 행사에도 참석해 '인재의 중요성'을 몸소 실천하는 김 사장의 열정적인 모습에 매료돼 한화건설을 선택한 직원도 적지 않다는 게 회사 관계자 설명이다. 김 사장은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열정이 강점으로 꼽히지만 심성의 바탕에는 '인간애'가 깔려 있다. 주위 사람들은 김 사장을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직원들 경조사를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는 현장 직원들에게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돌리는 식이다. 얼마 전엔 부인 나수자 여사가 30여 년간 간직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전통무용 공연을 열어주고 직원 300여 명을 초대한 적도 있다. 한화건설은 사회공헌에도 앞장서고 있다. 2002년부터 서울시 저소득층 100가구를 대상으로 집수리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매월 4~5차례 지역의 불우아동 및 독거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마련해 직원들이 봉사활동을 나갈 수 있도록 한다. 또 시청 앞 분수 기증 및 서울세계불꽃축제, 교향악 축제 등 그룹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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