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노조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미래도 낙관할 수 없습니다.” 최근 들어 산별교섭을 둘러싸고 금속노조와 완성차 업체 간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자동차 업계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고유가 쓰나미’로 세계시장에서 자동차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과거 영국의 세계적인 명차 업체들이 노사관계가 나빠지면서 줄줄이 해외로 팔려나간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다. 우리도 영국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노동운동의 근본적인 틀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와 관련, “지난 1987년 이후 기득권을 확보해온 이념주의적 운동세력과 1970~1980년대 노조시대의 관성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힘을 얻으면서 우리의 노동운동은 여전히 기존의 낡은 틀과 인식에 머물러 있다”며 “이제는 그 깊은 늪에서 빠져나와 변화와 혁신을 이뤄야 할 때”라고 자신의 동료들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노동계에서 터져나온 자성의 목소리는 강성노조의 ‘대표주자’인 현대차 노조 내부에도 변화의 조짐을 가져오고 있다. 지난해 5월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현대차 공장을 방문하자 노조원들은 “실속 없는 정치파업은 제발 그만두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렇다면 현대차 노조에 노동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다. 노조원들은 다소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는 있지만 정치집단화돼 있는 노조 지도부는 여러 계파가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어서 아직은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조 지도부의 변화가 없이는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본 도요타는 수십년 동안 이어온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세계 1위 자동차 업체로 올라섰다. 반면 한때 세계시장을 호령했던 미국은 대립적인 노사관계 때문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그동안 파업을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하려는 방식이 관행화되면서 노사 문제가 대화와 타협으로 해소되기보다는 힘으로 봉합되는 전철을 밟아왔다. 21세기 자동차 산업의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선진업체들의 견제와 후발업체들의 추격으로 샌드위치 신세가 된 한국 자동차 업계에 그 어느 때보다 협력적인 노사관계가 절실한 상황이다.
■ 50년대 車수출국 1위 '영국' 노사관계 악화로 서서히 몰락 |
1950년대까지 세계 2위의 자동차 생산국, 세계 1위의 자동차 수출국이었던 영국은 1960년대 들어 노사관계가 악화되면서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영국의 자동차 노동조합은 산업별 노조 이외에 전국과 지방 단위로 선반공ㆍ조립공ㆍ용접공 등 다양한 직종별로 노조를 조직해 사측은 이들과 개별 교섭을 해야 했다. 게다가 협약 기간이 서로 달라 사측은 1년 내내 단체교섭에 매달리면서 경영에 전념할 수 없었다. 직종별 노조를 허용한 영국의 정책은 노노 갈등마저 부채질했다. 다른 직종과 임금 격차를 일정하게 유지하거나 축소하려는 노조 간 경쟁으로 파업이 빈발했다. 심지어 세력을 과시하거나 조합원을 다른 노조에 빼앗긴 데 대한 보복으로 단행된 파업도 있었다. 잦은 노사분규와 경쟁력 저하를 버티지 못한 영국의 완성차 메이커들은 1975년 정부에 의해 BL(British Leylandㆍ로버의 전신)로 국유화됐다. 그러나 BL 경영진 역시 노조를 방치하다시피 하면서 전략 차종을 개발하지 못해 내수시장조차 수입차들에 내주기 시작했다. 1970년대 말 대처 정부가 노조에 대한 공세를 폈으나 노사 대립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파업이 연례화되면서 시장은 영국 차를 외면했다. 결국 영국의 자동차 명가들은 줄줄이 해외로 팔려나갔다. 1994년에는 재규어ㆍ랜드로버ㆍ롤스로이스 등을 통합한 국영 완성차 업체인 로버마저 독일 BMW로 넘어갔다. 이로써 상당 기간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석권해온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이후 BMW는 각각의 브랜드를 분리매각했고 MG 로버는 영국계 컨소시엄으로 넘겼다. 2005년 5월에는 이 MG 로버마저 파산에 이른다. 영국의 자동차 엔진이 확실히 멈춰버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왜곡된 노사관계가 영국의 자동차 산업을 몰락시킨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