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용 전기차 ‘맨손’ 시작/이젠 성인용 대형차 ‘야망’/감속기 생산하다 납품 대금 못 받아 부도/외국돌며 한달간 사업 구상후 개발 착수/출시되자 “날개”… 내년 매출 100억 예상94년 5월 정인수 서울전기산업 사장(37)은 모 은행 안산지점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1억원만 빌려달라』고 생떼를 썼다.
은행 지점장은 어이가 없었다. 그는 직장시절 다녔던 대학원에서 만난 경영학 석사 동창인데 한번도 거래가 없던 은행에 담보도 없이 신용대출 해달라는 것이었다.
『대학원 동창이라 한 번 와보라고 했을 뿐인데 이렇게 고함을 지르면 어떡합니까.』 지점장은 직장생활 30년에 이런 사람은 처음이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럴수록 정 사장은 『지점장께서 해줄테니 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라며 엉덩이를 의자에 파묻고는 우유팩에 든 소주를 계속 들이켰다. 정 사장은 어차피 생떼를 쓰지 않고는 1억원 대출건이 풀 수 없는 문제라고 판단, 미리 소주 2병을 마신 후 다시 2병을 큰 우유팩에 부어서 들고 은행을 찾아간 터였다.
답답해진 지점장은 『당신 혼자 뭘 마시냐』며 우유팩을 빼앗아 자신도 마시기 시작했다. 만취상태의 정사장과 지점장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근처 술집을 찾아 들어갔다.
정사장은 밤새도록 술잔을 건네면서 『이번 대출이 안되면 나는 죽는다』며 매달렸다. 결국 대출은 이뤄지고 정 사장은 첫 납품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59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정 사장은 고학으로 어렵게 경주공고와 울산대 기계학과를 졸업한 뒤 전자업체인 한국전장에 공채 1기로 입사했다. 그러나 샐러리맨의 월급으로는 고향집과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독립해서 내 사업으로 오퍼상을 한번 해보자.』 남다른 영어실력으로 해외영업을 맡았던 터라 무역쪽으로 관심이 쏠렸다.
91년말 한국전장을 그만두고 독일로 날아가 세계적인 감속기·변속기 전문메이커인 SEW사를 방문, 한국내 판매권을 달라고 졸랐지만 SEW사의 한국 직접진출 계획에 따라 거절당하고 말았다. 대신 SEW사의 한국법인에서 다시 샐러리맨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낙착됐다.
이제나 저제나 창업의 기회를 노리던 그는 감속기 생산기술과 판로를 어느정도 확보한 94년 2월초 개인회사로 서울전기산업을 차리고 사업길로 나섰다. 정 사장은 때마침 문을 연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창업보육센터(안산시 소재)에 보금자리를 틀고 영업에 나서 1억여원의 감속기를 주문받았지만 원자재를 구입할 돈이 없었다. 그래서 찾아간 것이 모 은행의 안산지점이었다. 은행의 도움으로 사업이 궤도에 올라서던 정 사장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부산의 모 업체에 납품하고 받은 어음 6천7백만원이 부도가 났다. 정 사장은 이 일을 계기로 『앞으로 어음받는 장사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현찰장사를 하려면 수출품을 만들어야 한다며 외국을 찾아갔다.
한달 동안의 시장조사 끝에 어린이용 전기자동차가 시야에 들어왔다. 핵심기술은 모터의 회전속도를 줄여주는 감속기여서 정 사장으로서는 전공품목인 셈이었다. 그는 곧바로 개발에 착수, 먼저 모터의 회전수를 줄여 적정속도를 내게하는 감속기를 특허출원했다.
어린이용 전기자동차지만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1∼2단 및 후진 기어, 엑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깜빡이에 윈도브러시까지 모두 갖추고 집에서 한번 충전하면 4시간 이상을 달릴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말 첫 작품인 어린이용 전기자동차를 10∼50만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선보였다. 서울전기산업의 어린이자동차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날개돋힌 듯 팔려나갔고, 미국 등지에 「유로모터스」라는 자체상표로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정 사장은 현재 시화공단내 임대공장에서 어린이 자동차를 만들고 있는데 국내외에서 주문이 쇄도함에 따라 경주에 1천평 규모의 자가공장을 짓고 있다.
『올해는 생산능력이 달리는데다 애프터서비스망이 구축되지 않은 관계로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매출액을 10억원선으로 제한할 방침입니다. 올연말 경주공장이 준공되면 내년부터는 외형을 1백억원 정도로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정 사장은 어린이용 전기자동차 사업이 본 궤도에 진입하는대로 성인용 전기자동차 생산에 도전, 대형 자동차회사로 올라서겠다는 야망을 펼치고 있다.<최원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