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IQ 입시

최태지 정동극장장

일본의 어느 대학에서 IQ 테스트 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했다는 기사를 봤다. 복잡해지는 세상 속에서 더이상 상식적인 지식 테스트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 학교측의 설명이었다. 요는 단순 지식보다 종합적인 사고 능력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IQ 테스트만으로 인재를 뽑을 수 있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사고능력도 일종의 테크닉이다. IQ 테스트도 연습하면 성적이 오른다고 하지 않는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아야 하는 요즘, 우리에게는 ‘테크닉’보다 중요한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특히 몇 년 전부터 모스크바와 스위스 로잔, 불가리아 바르나 등의 세계적인 발레 콩쿠르 심사를 다니면서 그런 생각을 곰곰이 하게 됐다. 날이 갈수록 기술이 뛰어난 무용수는 흔해지고 있다. 하지만 발레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백조의 호수’ 32회전 동작과 같은 고난도 테크닉이 아니다.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연기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자기만의 개성이 있어야 냉정한 무대 위에서 존재감을 가질 수 있고 열정이 있어야 관객의 마음에 불을 지필 수 있기 때문이다. 발레뿐만 아니라 무대예술의 세계에서 자기만의 개성이란 자아실현의 수단이자 생존의 문제다. 무대 위에 서는 사람들은 자신의 색깔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명성 높은 발레단의 일원이 된다 해도 그것은 시작일 뿐이다. 세계적인 댄스 컴퍼니의 단원들도 새로운 컴퍼니에 들어가기 위해 2~3년에 한번씩 오디션을 본다. 자기의 색을 찾고 좋은 것을 배우기 위해 주저 없이 짐을 싸 들고 떠나는 것이다. 넓은 세계를 떠돌며 다양한 사람과 생각, 문화를 접하는 가운데 인간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자기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완성해나간다. 그런 유목민 같은 생활을 예술가의 열정으로 견디며 관객에게 테크닉을 넘어선 인간 본연의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한다. 얼마 전 한 예술학교에 심사하러 갔다가 만난 어린 학생이 생각난다. 그 아이는 뚱뚱했다. 게다가 형편없이 서투른 발레 초보였다. 그러나 전혀 기죽지 않고 웃으며 즐겁게 춤추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시험장에는 몸매도 예쁘고 기량 좋은 아이들이 더 많았지만 오직 그 학생만이 기억에 남았다. 그에게는 다른 아이들의 획일적인 몸짓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개성이 있었다. 그리고 춤을 추고 싶다는 진실한 마음이 보였다. 누가 봐도 남들이 안된다고 말렸음이 분명한데도 그 아이는 용감하게 자기 세계를 찾아 나선 것이다. 이 아이라면 뭔가 해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가 돼도 결국 찾아야 하는 것은 이 아이가 보여준 것 같은 개성과 순수한 열정이 아니던가. 이런 아이가 10년 뒤 제2의 강수진이 돼 우리를 놀라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입시와 취직시험이 다가오는 요즘, 미래를 이끌어나갈 인재가 어디에 있을지 상상해본다. 아마도 IQ 테스트 공부보다 용감하게 자기의 색을 찾는 여행의 길을 떠나지 않았을까. 그 학생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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