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아웃도어 업체인 노스페이스의 재판매가격 유지행위에 대해 사상 유례없는 거액(52억4,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과도한 가격 거품이 껴 있는 해외 명품 브랜드의 왜곡된 유통구조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다. 실제 성인들에게는 아웃도어 업계의 명품, 학생들에게는 계급장으로까지 불리던 노스페이스는 이번 조사에서 판매점 마진만 무려 40%가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공정위는 노스페이스 조치를 계기로 유통과정에서 가격 경쟁을 제한하는 불공정행위에 대해 보다 강력한 처벌을 가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의 칼끝이 다른 해외 명품 브랜드 전반으로 뻗어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본사가 유통 단계 경쟁 차단=재판매가격 유지행위란 상품을 생산, 판매하는 사업자가 상품을 재판매하는 사업자에게 거래단계별 가격을 정해 그 가격대로 판매할 것을 강제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는 유통 단계에서 가격 경쟁을 제한하는 것으로 공정거래법상 처벌 요건이 된다.
본사가 직영점을 통해 판매하거나 판매점이 판매수수료만 수령하는 위탁 판매의 경우 재판가 유지행위를 했다 해도 처벌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판매점이 상품을 아예 매입해 판매하는 사입판매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실질적인 상품 소유권이 판매점에 있기 때문에 본사가 재판가 유지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노스페이스는 현재 151개 판매 전문점에서 사입판매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판매 가격(할인율, 마일리지 적립률 포함)을 강제하고 온라인 판매 경쟁 등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이 문제가 됐다.
◇판매점 마진만 42%, 14년에 걸친 가격통제=공정위는 노스페이스를 국내에서 독점 판매하는 골드윈코리아가 무려 14년에 걸쳐 전문점들의 가격을 통제하고 온라인 판매도 금지시키면서 사실상 전문점들이 가격 할인을 하지 않기로 담합한 것과 동일한 효과를 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의 이번 조사에서 노스페이스 전문점의 마진은 무려 42%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노스페이스 본사가 골드윈코리아에 상품을 넘길 때와 골드윈코리아가 전문점에 상품을 넘길 때도 마진이 발생하기 때문에 실제 원가는 국내 판매가와 극심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높은 마진에도 불구하고 노스페이스는 전문점에서 10% 이상 할인은 원천적으로 금지했다. 본사 가격정책을 어기고 할인 판매한 전문점에는 계약해지, 출고정지, 보증금 징수, 경고 등 다양한 제재조치를 취한 사례도 공정위 조사에서 드러났다.
◇업계는 강하게 반발 "책정기준 부당"=이번 공정위 조치와 관련해 노스페이스 운영사인 골드윈코리아는 "지난 2008년부터 약 260만건의 할인판매가 실시되고 있는 등 강제적으로 할인 판매를 막은 적은 없다"며 "아웃도어 시장점유율 역시 전체 60여개 브랜드 중 15% 수준으로 과징금 책정 기준도 부당하다"고 맞섰다.
공정위가 가격할인 경쟁을 제한한 근거로 든 ▦계약해지 ▦출고정지 ▦경고건 등 실제 사례에 관해서도 대부분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노스페이스의 한 관계자는 "업체의 전반적인 영업활동과 그에 대한 법리적 견해 차이에서 발생한 상황으로 판단한다"며 "공정위 지적 사항에 대한 소명자료를 최초 조사 시점인 지난해 11월부터 제출했지만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내 다수 아웃도어 브랜드가 '노 세일 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번 공정위 조치로 업계 가격인하 등 파장이 촉발될 가능성도 크지 않은 상황이다. 대다수 아웃도어 및 여성복ㆍ남성복 업체, 백화점 입점 매장의 경우 '위탁판매' 형태로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어 최종 가격 결정권이 본사에 있기 때문이고 해외 명품업체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아웃도어 업계 관계자는 "불황기에 유일하게 선전하고 있는 아웃도어 브랜드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상당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