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신년 인터뷰]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과격한 경제민주화는 부작용… 불공정행위 바로잡되 지배구조 손대지 말아야<br>새 정부 최대과제는 일자리<br>성장잠재력 확충 위해 기업 기살리기 등 힘써야<br>정치 반대에도 원칙 고수, 정책 관철하는 리더십 필요




"요술방망이는 없다" 박근혜 뜨끔할 충고
[신년 인터뷰]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격한 경제민주화는 부작용… 불공정행위 바로잡되 지배구조 손대지 말아야새 정부 최대과제는 일자리성장잠재력 확충 위해 기업 기살리기 등 힘써야정치 반대에도 원칙 고수, 정책 관철하는 리더십 필요

대담=김영기 경제ㆍ금융부장 young@sed.co.kr
정리=이연선기자
사진=이호재기자
































현직을 떠난 지 벌써 1년 반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국가 정책을 보는 그의 눈은 오히려 또렷해진 모습이었다. 현안 구석구석을 명쾌하게 찔렀고 더욱이 새 정부에 대한 조언은 냉철하고 선이 굵었다. 수십년의 관료 생활과 장관으로만 두 정권을 이어간 관록이 곳곳에서 배어났다.

윤증현(67ㆍ사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직을 떠난 후 언론 인터뷰를 많이 하지 않았다. 후배들의 정책 수행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서울경제신문과의 신년 인터뷰에 어렵사리 응한 윤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꾸려나갈 새 정부와 최근의 상황에 대해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윤 전 장관은 새 정부의 최대 과제로 단연 '일자리'를 꼽고 "일자리 확충과 성장잠재력 향상, 법과 질서 확립 등 세 가지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요술방망이는 없다"면서 정공법을 통한 대응을 주문했다.

그는 특히 "과격한 경제민주화는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며 "대기업에 대해서도 총수의 잘못된 행위를 바로잡는 규제로 가야지 지배구조까지 손을 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기업의 기를 살리는 것이 급선무라는 뜻이다.

윤 전 장관은 박 당선인에 대해서는 선진 정부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정치적 반대를 무릅쓰고 원칙을 지키는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며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과감하게 수행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는 '일자리 정부' 돼야

새 정부의 캐치프레이즈는 '일자리 정부'가 돼야 한다고 윤 전 장관은 제시했다. 젊은이들의 일자리 문제가 그만큼 시급하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국내총생산(GDP)이 1% 오르면 일자리가 12만~13만개 나왔어요. 그런데 이제는 6만~7만개로 반 토막 났죠. 선거에서 2030 세대가 달랐던 것도 사회안전망이 완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정치권이 앞다퉈 복지를 외치지만 최대 복지는 일자리라고 강조했다.

"일해서 얻는 소득에는 보람을 느끼지만 사회단체로부터 지원 받은 소득에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일할 곳이 없어 학교 도서관이나 PC방을 전전하게 되면 당연히 사회 불만의 중심세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일자리 문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ㆍ유럽 등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윤 전 장관은 "기획재정부가 내년 경제성장률을 3%로 전망했는데 3% 성장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올해 경기가 어느 때보다 힘든 국면으로 흐를 것임을 예고했다.

"일자리 확충을 위해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법과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이들 과제를 해결하는 데 요술방망이는 없습니다."

경제 민주화 방법ㆍ속도 신중해야

윤 전 장관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젊은이ㆍ서민ㆍ영세자영업자가 느끼는 박탈감과 불평등에 따른 좌절감 등을 보면 국가사회가 시스템적으로 대안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당위성을 인정했다. 다만 경제민주화 역시 '기회비용'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며 수출하는 대기업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제민주화의 방법과 속도는 굉장히 신중해야 합니다. 과격하고 단기적인 방식은 부작용만 극대화할 것입니다."

그는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인력 빼가기 등 하청업체에 대한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는 정부가 감독을 철저히 해 시장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기업의 소유 구조는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소유 구조에 대해서는 국가와 역사ㆍ기업에 따라 다르고 정답이 없습니다. 고용이 불안하고 실업자가 많을 때는 행위규제 중심으로 가야 합니다."

세율 인상보다 비과세 감면 축소 시급

경기회복에 국가 재정이 얼마나 투입돼야 하는지로 화제를 돌렸다. 이른바 성장과 재정건전성 중 무엇을 선택할지 물어본 것이다. 윤 전 장관은 일단 재정건전성의 중요성은 인정했다. 우리나라가 두 차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재정건전성 덕이었다. 사상 최고 국가신용등급 달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본론에 들어가자 그는 "부채 없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 아니다"라며 기업과 국가를 비교했다.

"자본금만 쌓아놓은 기업만 있다면 그 나라 경제는 침체됩니다. 그럴 바에야 자본을 은행에 넣어서 이자만 받고 살아야겠죠."

외환위기 당시의 기업부채 비율처럼 너무 높아서야 곤란하지만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어려운 상황에서 재정건전성만 고집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재정건전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효율적이고 타이밍을 맞춘 자본배분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필요한 경우 기존 예산의 지출항목 조정, 증세, 국채발행 등 세 가지 방법이 모두 동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증세는 세율을 당장 올린다기보다 임시투자세액공제 등 비과세 감면이 중요합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것만으로도 30조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모자랄 경우 국채도 발행해야 합니다."

정파 국회, 반기업 정서로는 투자 과실 못 거둬


이제 막 구성된 인수위원회에 대해서는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무엇 하나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당면 과제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며 "국민소득 2만달러에서 사회안전망을 늘려가면서 4만달러 선진국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은데 모두 구조적인 문제라 새 정부가 정말 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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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적인 변수를 떠나 근본적으로 성장잠재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해결책으로 윤 전 장관은 노동ㆍ자본ㆍ기술 세 가지 분야로 나눠 조목조목 지적했다.

"노동의 경우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낮아 산업화 과정에 양질의 노동력이 크게 기여했습니다.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양질의 인력이 필요한데 현재의 보편적 교육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자본투자에 대해서는 "투자는 기업이 하는데 정부 권한은 대부분 '제왕적 국회'로 옮겨진 상태라 규제완화가 쉽지 않다"며 "정파적 목적만 앞세우는 국회, 반기업 정서로는 투자 과실을 거둘 수 없다"고 우려했다. 마지막으로 기술에 대해서는 "정부가 연구개발(R&D) 투자를 많이 했지만 아직도 생산성은 낮다"고 아쉬워했다.

가계 부채 공적자금 지원 최소화해야

이번에는 부동산과 금융 문제를 꺼내봤다. 그는 두 손을 내저으며 "제갈공명을 데려다 놓아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만큼 해결이 어려운 문제란 뜻이다. 박 당선인의 '국민행복기금 18조원 조성'에 대해서는 "당위성은 인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뒤따를 형평성, 모럴해저드 문제는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 전 장관은 "가계부채 1,000조원 가운데 누구에게 혜택을 주고 누구에게는 주지 않을 것인가, 제도권 금융기관은 구제를 받는데 사채를 쓴 비제도권 이용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 성실하게 원리금을 갚은 사람은 어떻게 되나 등 전혀 간단하지 않다"며 "이는 사회적 근간에 대한 문제"라고 일침을 놓았다.

사실 과거 정부의 부채탕감 성적표는 좋지 않았다. 농어촌 부채탕감은 수없이 반복됐지만 오히려 '쓰고 보자' 식으로 농민의 빚은 늘기만 했다. 기업을 살리기 위해 동원된 '8ㆍ3조치(사채동결긴급조치)' 역시 성공적이지 못했다.

"가계부채의 시급성은 인정되지만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공적 지원을 하더라도 최소화해야 할 것입니다."

주택가격에 대해서는 "집값은 올라도 문제, 떨어져도 문제"라는 말로 요약했다. 집값이 오르기를 바라는 국민이 있는가 하면 내리기를 바라는 국민도 있다는 의미다. 그는 "정부 입장에서는 올라가도 서서히, 내려도 서서히 가야지 급격한 인상과 인하는 모두에게 나쁘다"며 "집값과 전셋값 역시 상충관계라 결국은 선택과 조정의 문제"라고 말했다.

환율 방향 자체를 틀어서는 안돼

환율에 대해 질문했다. 윤 전 장관은 재임시절 선물환포지션제도, 외환건전성부담금(은행세), 외국인 채권투자과세 등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도입했다.

그는 최근 글로벌 환율전쟁 양상에 대해 우려했다. 미국ㆍ유럽ㆍ일본이 일제히 경기회복을 위해 수출을 늘려야 하다 보니 경쟁적으로 통화팽창에 나서고 있어서다.

"우리경제가 성장하고 돈이 유입되면 환율은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환율절상 폭과 속도가 너무 가팔라서 기업이 준비할 수 없을 정도라면 정부와 중앙은행이 조정에 나서야겠지만 방향 자체까지 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수출산업과 내수에 큰 괴리가 있는데 내수에는 환율절상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외환 당국에 대해서도 "절대 노출되지 않게, 그림자처럼 움직여야 한다"는 조언을 남겼다.

박근혜 정부, '원칙을 지키는 정부' 되기를

윤 전 장관은 독일의 사례와 비교하면서 박 당선인의 리더십에 기대감을 보였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차기 총선 패배를 감수하면서 개혁을 추진했고 뒤이어 정권을 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슈뢰더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며 그의 정책을 차질 없이 집행하겠다고 약속했던 사례를 들었다. 사민당 출신인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가 정적인 사회당의 메르켈 총리를 지원했던 유명연설도 소개했다. 그는 "본인이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정책을 관철시키고 국가에 필요하다면 정적도 지원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전 장관은 박 당선인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는 "정치적 반대를 무릅쓰고 원칙을 지키는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며 "대통령이 다하겠다고 나서기보다 믿고 맡긴 뒤 결과로 책임을 묻는 시스템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증현 前장관은
소신있게 정책 추진
경제관료의 '큰 형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 관료의 큰 형님'이다.

1971년 공직에 입문한 윤 전 장관은 참여정부에서 3년간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겸 금융감독원 원장, MB정부에서는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맡는 등 역대 정부의 경제 정책을 집도했다. 2010년 8월부터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대신해 총리권한대행을 맡기도 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2월 경제사령탑을 맡아 외신으로부터 '교과서적인 회복'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당시 최악의 경제 상황에서도 28조원에 달하는 재정 조기 투입, 적극적인 기업 규제 완화 등으로 2009년 0.2%의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해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또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와 재무장관회의를 주도한 윤 전 장관은 환율 갈등 해소와 국제통화기금 지분 개혁 등을 이끌어냈다.

'윤따거(큰 형님이라는 뜻의 중국말)'라는 별명대로 후배 관료의 신망도 높다. 소신발언이나 정책은 묵직하게 밀고 간다. 실제로 2004년 8월 금융감독위원장 겸 감독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참여정부 정책 방향과 달리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금산분리'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논란만 지속됐던 생명보험사의 주식시장 상장의 길을 연 것도 윤 전 장관이다.

물론 그에게 좋은 시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 재경원 금융정책실장으로 고군분투했으나 결국 책임을 지고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재정부 장관을 퇴임한 후 고위관료 출신으로는 드물게 연구소를 차렸다. '윤 경제연구소'다. 윤 전 장관은 "최전방의 경제 동향을 관찰하는 연구소이기도 하고 경제학 고전을 뒤져 경장의 논리를 닦는 서재이기도 하고 여러분과 차를 나누는 사랑방이기도 하다"고 지인들에게 e메일을 띄우기도 했다. 모여서 논의하고 정보와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만남의 장(場)이 되는 '사랑방'이 지향점이다. 연구소를 여의도에 둔 이유에 대해 "여의도는 조용하면서 지나가다 들르기 편하다. 금융위원장 때부터 운동하던 곳도 옆에 있고 무엇보다 여의도 공원이 가까워 좋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면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소통이다. 그는 "사람을 다방에서 만날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여의도는 여러 사람과 만나기에 가장 편한 공간"이라며 웃었다.

◇약력

▦1946년 경남 마산 ▦1969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86년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공공정책ㆍ행정학 석사 ▦1971년 행정고시 10회 ▦1992년 재무부 증권국장ㆍ금융국장 ▦1994년 재경원 금융총괄심의관ㆍ세제실장ㆍ금융정책실장 ▦1998년 세무대학장 ▦1999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상임이사 ▦2004년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겸 금융감독원 원장 ▦2008년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자문위원 ▦2009년 기획재정부 장관 ▦2012년∼ 윤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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