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3번의 사기 3번의 실패'-큰손 장영자의 인생유전

「희대의 사기꾼」 「파란곡절의 여인」이란 수식어와 함께 「큰 손」으로 불리던 장영자(張玲子·여·56).지난 82년 2,000억원대의 어음사기에 이어 94년 공(空) CD(양도성예금증서)로 100억원대의 사기를 쳐 두차례 옥고를 치르는 張씨의 인생은 돈과 끈질긴 악연(惡緣)을 맺어왔다. 그녀는 38살이던 82년 우리나라 금융사상 최대의 어음사기사건으로 경제의 근간을 뒤흔든 이른바 「이·장(李·張)사건」의 장본인으로 남편 이철희(李哲熙)씨와 함께 구속됐다. 당시 자금난에 빠진 기업들을 상대로 중앙정보부차장과 유정회 국회의원을 지낸 남편 李씨와 함께 어음 사기극을 벌이다 들통나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어음의 귀재라고 불리는 張씨는 남편 李씨를 등에 엎고 고위층과의 친밀한 관계를 내세워 기업들에 대한 자금지원의 대가로 지원금의 2배에서 최고 9배짜리 어음을 받아 이를 사채시장에 유통시키고 착복하는 수법을 썼다. 이 사건으로 두 사람은 물론 은행장 2명과 기업인 등 모두 32명이 구속되고 張씨의 형부이자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李圭光)씨도 구속됐다. 10년 가까이 형을 살다 92년 가석방으로 풀려난 張씨는 구속 전에 사둔 제주도 성읍목장 930만평, 서울 종로 평창동 임야·대지 1만평 등 부동산값이 1,000억원대로 불어나 은행빚을 갚고도 남는 떼부자가 되서 장안에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출소 뒤에도 벤츠를 굴리며 재산가 행세를 하던 張씨는 재기를 목적으로 어음을 융통시켰고 이로 인해 사위인 탤런트 김주승씨가 경영하던 회사와 또 다른 기업(유평상사)이 모두 70억원대의 부도를 냈다. 이에 따라 출소 1년10개월만인 94년 1월 또 사기혐의로 4년형을 선고받고 다시 철창행 신세가 됐다. 형기를 거의 마친 98년 8·15특사로 풀려난 張씨는 출소한 지 2년도 안돼 다시 구권화폐사기극의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했다. 44년 전남 목포에서 부유한 집안의 3남4녀 중 3녀로 태어난 張씨는 숙명여대 재학시절 메이퀸으로 뽑힐 정도로 미모가 뛰어나고 화술까지 겸비한 재원이었다. 張씨는 두 차례 이혼하고 위자료로 받은 5억원을 밑천삼아 부동산·증권투자, 단자회사 어음매입으로 재산을 불렸다. 사정서슬이 시퍼렇던 5공화국 초기인 82년 李씨와 서울 장충동 사파리클럽에서 정·관계 인사들을 초청한 초호화판 결혼식을 올렸던 張씨는 결국 「세번의 사기로 세번의 인생을 실패한 여인」이란 오명을 안으며 다시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최석영기자SYCHOI@SED.CO.KR 입력시간 2000/05/17 17:26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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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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