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통화절하 자제 합의했지만… 엔저에 사실상 면죄부

■ G20 재무·중앙은행 총재 회의 폐막<br>일본 비판 아예 빠지고 합의 모호·실효성 없어<br>"엔·달러 95엔까지 갈 것"


"환율전쟁을 선동한다는 시각을 벗게 된 게 가장 큰 성과다."

지난 16일 러시아 모스크바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 회의 폐막 뒤 기자들과 만난 아소 다로 일본 재무장관의 표정은 밝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신흥국들이 엔저 유도 비판을 이끌었지만 일본 측이 철저한 이론 무장으로 임해 심야까지 박빙으로 진행된 교섭을 이끌었다"고 평했다.


이 같은 일본 측의 만족스런 반응은 이번 G20 회의 결과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G20 장관들은 공동선언을 통해 "통화의 경쟁적인 평가절하를 자제하고 경쟁우위 확보를 위한 목적으로 환율 목표를 설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근 격화되는 환율전쟁에 대해 각국의 자제를 요청한 것이다.

또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신흥국들의 경제마저 왜곡되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해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돼야 하며 정부 개입은 안 된다'는 원칙과 '금융정책은 자국의 경제회복과 물가안정을 위해서만 사용해야 하고 (타국으로의) 파급 효과를 유의하며 영향 등을 감시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전반적인 합의 내용이 모호해 실효성이 없는데다 강제ㆍ구속력도 없다 보니 말 그대로 '선언'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핵심 쟁점이었던 일본의 급속한 엔저에 대한 비판은 아예 빠졌다. 이 때문에 환율전쟁에 대한 진일보한 대안이 나올지 관심을 모았던 G20 회의가 '형식적 합의'에 그치며 사실상 아베노믹스에 면죄부를 줬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관련기사



이는 미국ㆍ영국 등도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을 펴고 있어 일본을 비난할 입장이 아닌데다 자국 경제회복을 위해서라도 아베노믹스의 성공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 국채 주요 투자국인 중국 역시 위안화 가치가 저평가된 수준이라는 미국 등의 반발을 감안해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G20이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환율전쟁 격전지가 될 것'이라는 당초 전망도 빗나갔다.

로이터통신은 "심각한 충돌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결국 어느 국가도 환율전쟁이라는 부정적인 이슈를 실제화하는 위험성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환율논쟁에서 한걸음 물러서고 일본발 열기도 꺼뜨린 형식적 합의"라고 혹평했다. 실제 선진국 금융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환율전쟁이라는 담화는 과장된 것"이라면서 "각국이 충돌하기보다는 협력하기로 결론 내린 게 가장 좋은 소식"이라며 사태 진화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또 다른 쟁점이었던 새로운 재정적자 감축 목표도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데 실패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의) 각국이 보호주의에 저항하고 시장 개방을 지향하기 위한 목표 실천에 한목소리를 낼지 미지수"라고 평했다.

이 때문에 아베노믹스의 고삐가 풀리면서 엔화가치가 조만간 달러당 95엔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국 뉴욕 웰스파고은행의 닉 베넨브로크 환전략 수석은 "지난주는 주요7개국(G7) 및 G20 회의를 앞두고 외환 변동성이 컸지만 앞으로는 지난 3개월간 달러화 대비 15% 급락한 엔저 기조가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AP통신도 "G20 공동선언문에 일본에 대한 언급이 생략된 점은 엔저 용인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이번 공동선언이 급격한 엔저에 대한 각국의 우려를 배경에 깔고 있어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우치다 미노리 미쓰비시도쿄UFJ은행 수석분석가는 "(이번 공동성명으로) 일본 정부가 (과거처럼) 구체적인 환율 목표를 제시하기 어렵게 됐다"고 분석했다. 추세적으로는 엔저 기조가 유지되겠지만 그 속도는 느려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희원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