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스무고개'로 전락한 대북정책


어릴 적 즐겨 하던 놀이 중에 '스무고개'라는 것이 있다. 술래만이 알고 있는 답에 대해 스무 번 질문을 해 정답을 알아내는 게임이다. 질문과 답을 되풀이하다 보면 정답에 도달하기도 하지만 주어진 스무 번의 질문 기회를 다 쓰고도 답을 알아내지 못해 답답해할 때도 있다. 지금 통일부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정부와 끝이 없는 스무고개를 하는 기분일 것이다. 남북관계에 대해 질문을 해도 속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에 일어났던 일이 단적인 예다. 남북 군사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보도가 이날 오전부터 나왔고 심지어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회 회의 석상에서 이 사실이 공개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군사회담이 끝나고 오후4시가 넘을 때까지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이미 군사회담이 열리고 있었던 오전10시30분 통일부 정례 브리핑에서 기자들은 관련 질문들을 쏟아냈지만 들은 것은 무려 18차례나 반복된 "확인해드릴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정부는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회담이 비공개로 진행된 것에 대해 양측이 비공개로 개최하기로 협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남북관계는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는 특수성을 이해해달라"고도 했다. 이를 두고 기자들은 '북측이 비공개를 원했고 우리 측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해석하고 기사를 썼다. 하지만 이튿날인 16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공개 보도'를 통해 북측이 이번 군사당국자회담을 공개로 하자고 했으나 남측에서 비공개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남북 간 진실공방이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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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통신은 또 남북 군사당국자회담을 위해 양측이 접촉했던 과정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보도했다. 기자들이 그렇게 궁금해하던 사건의 '전말'이 북한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정부 말은 믿지 못하게 됐고 북한 매체를 더 신뢰하게 됐다"는 자조 섞인 푸념까지 나왔다.

정부는 13일 북측에 제2차 남북 고위급접촉을 오는 30일 개최하자고 제의했다는 사실도 이틀이 15일에 '뒷북'으로 공개했다. 하지만 13일 통일부 대변인은 고위급접촉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제의할 날짜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었다. '정부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냐'며 기자들이 항의하자 대변인은 "나도 몰랐다"며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박근혜 정부는 대북정책에 대한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비밀회담이나 비선을 통한 접촉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 북한을 대하는 정부의 모습에서는 투명성은 찾아볼 수 없다. 가뜩이나 먹고살기 어려워지면서 국민들은 통일이나 남북관계 개선에 관심이 없다. 이럴수록 국민들과 소통하면서 남북 간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야 한다. 국민과의 소통 없이 북한과의 소통이 원활히 될 수 없다. 기자들과의 스무고개도 이제는 그만할 때다.

노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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