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불안한 연말…경제주체들 갈피 못잡는다

정부-한국형뉴딜 발표 연기·성장률도 가늠 못해<br>기업-비상경영속 영업이익 급감·대기업도 감원<br>가계-민간소비 6분기째 감소등 국민은 "절망"

중견 A기업의 기획담당 임원인 김모씨의 머릿속에는 ‘연말’이란 단어가 없다. 예년 같으면 내년 사업계획 수립을 갈무리해나갈 시점이지만 올해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기본이 되는 경제성장률과 환율ㆍ금리 등 경제지표 어느 것 하나 딱히 잡히는 게 없다. 그는 “사장은 연일 독촉하지만 좀처럼 ‘감(感)’이 잡히지 않는다”며 “다른 기업 임원들도 똑같은 상황”이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이런 와중에 회사에서는 연말 보너스 100% 지급을 보류하겠다고 통보했고 명예퇴직 얘기도 나오고 있다. “지난 98년 이후 6년여 만에 ‘파리목숨’이란 말이 실감난다”고 고백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지만 경제주체들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정부와 기업ㆍ가계 3대 주체 모두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다. 경제정책 운영을 총괄하는 재정경제부의 간부급들이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이헌재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의 유임 여부다. 최근 이 부총리가 청와대 등과 대립곡선을 그리며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지면서 교체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한 사무관은 “이러다가 내년 초 핵심 라인들이 모조리 물갈이되는 것 아니냐”며 뒤숭숭한 분위기를 반영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년 경제 운용계획을 만드는 손길도 더디기만 하다. ‘한국형 뉴딜’은 이달 중 내놓기로 했다가 내년 2월께로 슬그머니 연기됐다. 행정수도 대안도 오리무중이다. 내년 경기를 좌우할 양대 정책이 안개 속에 있는 셈이다. 연말까지 나오기로 돼 있던 국내자금 해외 유출 대책과 벤처대책 등도 내년 초에나 나올 수 있을 듯하다. 기본지표조차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마음 속으로야 5% 달성이 힘들 것으로 예상하지만 섣불리 성장률을 낮출 수는 없다. 국민들에게 심리적 불안감을 줄 수 있고 기업 투자만 위축시킬 수 있는 탓이다. 때문에 정부와 국내외 기관의 성장률 추계는 1%포인트 안팎의 오차가 있다. 일자리로 따지면 10만개다. 이번주에 내년도 경제전망을 발표하기 위해 막바지 작업 중인 한국은행의 한 고위 인사는 “좋아질 구석이라곤 보이지 않는다”며 “어떤 전망을 내릴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은행의 내년 전망을 지켜본 뒤 경제운용을 ‘중립’으로 할지 ‘부양’으로 할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고민을 토로했다. 정부가 흔들리다 보니 기업들의 고충만 깊어지고 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한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 6개월만 이어지면 ‘삼성 위기설’이란 말이 나오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고 말했다. 그룹을 견인해온 삼성전자의 플래시메모리와 액정표시장치(LCD) 등의 시장전망이 어두워지면서 4ㆍ4분기 영업이익은 수직 하락할 듯하다. 자동차 업계는 이미 ‘위기상황’이다. 김동진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마른 수건도 다시 짜자”고 나선 후 휘하 협력업체들까지 일제히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 1차 협력업체인 K사의 한 관계자는 “그야말로 좌불안석인 상태”라고 전했다. ‘불안한 연말’ 속에서 기업들은 몸집(비용) 줄이기를 선택했다. 적자 기업은 차치하고 은행과 조선업체들에까지 명예퇴직의 칼바람이 몰아쳤다. 코오롱ㆍ현대중공업ㆍKT 등 대기업마저 감원 대열에 들어섰다. 중견그룹의 한 부장은 “환란 때는 그래도 두둑한 명예퇴직금이라도 챙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정상 퇴직금이라도 제때 받을지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분위기를 전달했다. 가계 부문의 위기감은 더욱 심각하다. 민간소비는 6분기 연속으로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0%가 위기감이 아닌 ‘절망감’에 젖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내년 소비 성장률을 4%로 예상했지만 실제 국민의 시각은 다르다. 통계청에 따르면 경기침체로 명예퇴직 연령이 낮아지면서 50대 퇴직이 급증, 40대 후반의 가계소득이 50대 초반을 큰 차이로 앞질렀다. 45~49세의 분기별 가구소득이 50~54세를 넘어선 것은 2002년 1ㆍ4분기 이후 2년 만이다. 3대 경제주체들의 불안함 속에서 연말 경기는 환란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한 할인점 점원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는 사람도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4ㆍ4분기 성장률은 3ㆍ4분기에도 못 미쳐 4%를 달성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비회복이 기대됐던 9월 경기가 고꾸라졌던 현상이 연말에도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며 “내년 소비도 수치로는 플러스로 돌아설지 몰라도 체감경기는 쉽사리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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