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재창업」각오 특단대책 시급/제일은 구조조정 모델 제시를

◎무작정 특융요구땐 국민경제에 주름살만/자회사매각·감량경영 등 실질내용 담아야제일은행은 사실상 재창업한다는 각오로 나서야 한다. 은행장을 포함한 전임직원이 사표서를 가슴에 품고 다니며 은행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다시 뛰어야 한다. 연초부터 계속된 재벌그룹의 도산, 부도유예사태로 국내 금융산업이 집단도산의 위기에 봉착한 상황에서 제일은행이 회생의 길을 찾으려면 먼저 국민 대다수가 납득할 수 있을 만큼의 파격적인 자구노력이 제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일은행은 올들어 2차에 걸친 자구계획으로 오는 99년까지 총 5천1백25억원을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3년간 전직원의 급여를 동결하고 1천1백명을 감축하며 자회사인 창투·리스·금고 매각과 연구소 정리 계획이 포함됐다. 그러나 4백20여개에 이르는 지점·출장소 가운데 고작 적자영업점 5개소를 폐쇄하고 3개를 통폐합하는 데 그쳤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정도의 자구노력으로는 몇조원의 한은특융을 지원해봤자 회생이 어렵다고 본다』며 『제일은행이 사태의 심각성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제일은행은 지난 3월말현재 총여신 28조6천억원중 이자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불건전여신이 4조원에 이른다. 한은특융과 같은 파격적 지원조치 없이는 회생이 어려운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한은의 발권력에 의한 특융은 기업에 대한 부도유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특혜다. 더욱이 그 부작용은 국민 경제 전체에 주름살을 안긴다. 특융은 세계무역기구(WTO)체제에서 보조금 지원을 금지한 규정에 저촉돼 주요 교역국으로부터 통상마찰을 자초할 뿐아니라 통화 증발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유발, 모든 국민에게 세금보다 광범위한 피해를 던진다. 심하게 말해 우성·한보·기아그룹의 부실경영으로 제일은행에 떠넘겨진 엄청난 규모의 채무를 서민들이 쥐꼬리봉급을 모아 대신 갚아주는 결과나 다름없는 것이다. 제일은행에 대한 특융은 다른 은행, 제2금융권에 대한 형평에도 어긋난다. 올 상반기중 국내 상장사 가운데 순익 상위 20대 기업에 은행이 8개나 포함됐다. 연이은 기업부도 사태와 경기침체 속에서 다른 은행들은 피나는 노력으로 흑자를 유지했는데 같은 기간중 3천5백64억원의 적자를 안은 은행에만 특혜를 준다면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제일은행의 경영부실은 부실대출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다. 지난 94년 3천7백억원 이상을 들여 인수한 일은증권은 모기업의 부실을 증폭시킨 대표적인 투자실패 사례로 꼽힌다. 자구노력에 실패하면 은행도 3자인수에 예외가 될 수 없다. 제일은행은 차제에 임원·직원·지점수를 과감히 줄이는 등 국민들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특단의 자구노력」을 제시, 실천해야 한다. 80년대 중반 미국의 BOA(Bank of America)는 중남미 채무불이행에 따른 경영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본점 건물을 매각한 사례도 있다. 제일은행의 자구계획은 자체 회생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제일은행을 오늘의 부실로 몰고간 우성·한보·기아그룹뿐 아니라 최근 부도 또는 부도유예된 모든 부실업체에 대해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거나 다름없다. 제일은행은 금융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산업에 대해 전환기의 허물을 깨는 참된 구조조정의 모델이 될 수 있다.<유석기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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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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