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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찍어내는 조폐권을 가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화폐 말고 신조어를 양산하는 능력도 대단하다. 수사학의 달인은 앨런 그린스펀만 아니라 벤 버냉키 의장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처럼 확장이니 긴축이니 하면 알기도 쉽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하기도 쉽겠지만 그렇지 않다. 양적완화다, 테이퍼링(tapering)이다 하는 생소한 용어를 쏟아내는 탓에 일반인들로서는 헤아리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통화정책도 이제는 스마트폰과 같이 새로운 브랜드가 계속 태어나 투자자들을 헷갈리게 할 것이라는 점이다.
여하튼 그 문제의 테이퍼링이 과거 개념의 긴축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그것은 돈줄이 점차 마른다는 말이요, 그간의 양적완화로 인해 그야말로 완화된 자산가격이 이제는 점차 축소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실 돈을 풀어 경기와 금융시장을 활성화한다는 지렛대 효과에서 지난 수년간 지렛대 맨 끝에 놓여 공중부양이 가장 컸던 것은 금융시장이다. 지렛대가 내려가는 순간 실물경기보다 금융시장의 내리막길이 더 클 것이라는 걱정은 이유가 있다.
이러한 시장의 우려에 대해 은퇴재무설계 관점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별반 달라질 게 없다. 통화정책에 따른 자산가격 사이클은 한 사람의 일생 동안 몇 차례씩 반복된다. 심지어 전 세계 곳곳의 외환위기도 따지고 보면 불과 몇 년 터울로 어김없이 찾아온다. 반면 은퇴설계와 연금 투자는 적어도 50년 이상의 긴 투자시계를 기준으로 행해진다. 나이 들 때마다 늘 겪을 변화에 일일이 대응하다 보면 애당초 설계고 전략이고 거창하게 시작한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은퇴재무설계와 연금투자전략은 그 자체가 이미 자산가격 사이클, 금융위기의 반복을 몇 번쯤 겪을 각오를 하고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간의 자산가격 강세에 취해 자기 연령대에 맞지 않게 과도한 공격형 자산 배분을 하고 있었다면 그것을 정상적 수준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은퇴자금은 가늘고 길게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테이퍼링이라는 용어는 아무래도 통화정책 용어보다는 은퇴재무설계 용어로 훨씬 적합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