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6월 15일] 5만원권이 발행되는데…

오는 23일부터 5만원권 지폐가 시중에 유통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5만원권ㆍ1만원권ㆍ5,000원권ㆍ1,000원권의 4가지 지폐권종을 갖게 된다. 이에 따라 편리한 점도 적지 않다. 5만원권을 사용하면 10만원권 수표 발행이 줄어들고 1만원권을 여러장 갖고 다녀야 하는 불편도 없어진다. 한국은행은 우리 경제의 규모가 커졌고 또 선진 경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고액권 발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당초에 한은은 5만원권과 함께 10만원권도 발행하려 했다. 그뿐 아니라 화폐단위의 액면절하(리디노미네이션)도 추진하려 했다. 세계 15위 경제 대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화폐 액면가치가 너무 낮은 것도 문제라고 한다. 예컨대 화폐단위를 1,000:1로 낮출 경우 국제 통화인 미국 달러화나 유럽연합(EU)의 유로화와 1:1로 교환돼 원화의 위신과 자존심도 크게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런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2004년 한은이 추진했던 원화의 리디노미네이션은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두번이나 실패한 화폐개혁 경험 때문에 좌절됐다. 이와 함께 10만원권의 발행도 유보됐다. 그러나 고액권을 발행할 때 생기는 부작용도 결코 적지 않다. 우선 신용카드ㆍ인터넷뱅킹 등이 날로 활성화되는데 무엇 때문에 고액권을 발행해야 하느냐는 반론이 만만찮다. 실제로 최근에는 10만원권 수표의 사용도 줄고 있다. 요즈음 웬만한 지급결제는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거액결제는 와이어나 전자결제 서비스 등을 이용한다. 이런 추세는 정보기술(IT)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앞으로도 계속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보화 사회가 발전하면 궁극적으로 ‘지폐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적어도 지폐의 수요는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이런 추세에 거슬러서 신종 고액권을 발행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더구나 그런 주장을 다른 기관도 아닌 한은이 들고 나온다는 것은 더욱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한은이 가장 관심을 둬야 하는 분야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지급결제제도의 안정을 유지하는 일이다. 고액권을 발행할 경우 물가안정보다 오히려 인플레의 우려가 있다. 물론 고액권을 발행한다고 해도 이론적으로는 소득ㆍ물가ㆍ환율 등 실물경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화폐의 수요에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액권을 발행하면 ‘화폐적 환상’이 생겨서 물가를 올리고 자원배분을 왜곡하는 등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없지 않다. EU에서도 2002년 1월 유로화를 도입할 때 신규 화폐 도입이 물가를 상승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실제로 EU의 물가상승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식당ㆍ카페 등 많은 사람이 자주 이용하는 서비스의 가격이 크게 올랐다. 다시 말해서 유로화를 도입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 혼란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때문에 물가가 올랐다. 이런 현상을 흔히 메뉴 코스트(Menu cost)라고 한다. 신규 화폐를 도입해서 물가상승을 부채질한 경우는 우리나라에서도 1953년과 1962년의 화폐개혁 당시 나타났다. 이 같은 과거 화폐개혁 실패의 경험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돼서 또는 무슨 의도로 정부가 고액권을 찍어내는가. 이런 불안과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는 한 사람들은 화폐와 상품을 사재기하는 등 상당한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북핵 문제’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시국도 어수선하고 민심도 흉흉하다. 정부는 그동안 세원포착과 세수확대 목적으로 신용카드 사용을 적극 장려하고 세제상의 혜택까지 줬다. 고액권이 발행되면 그만큼 불투명한 거래가 확대될 것이 틀림없다. 최근에 급증하는 위조지폐 문제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돈세탁과 정교한 위폐가 유통되는 상황에서 고액권을 발행하는 것은 이런 문제를 더욱 심화할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대규모로 풀린 유동성에 따라 이제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다. 고액권 발행이 인플레이션을 악화하지 않도록 한은은 통화관리에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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