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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당신의 시간은 얼마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우선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가 그 기준점이 될 것입니다. 본인이 벌어들이고 있는 소득에 따라 같은 양의 시간도 값이 달라지겠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학생이라면 시급, 직장인이라면 연봉을 기준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어떤 시간이냐에 따라서 그 값어치가 다르게 책정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직장인에게 주말은 매우 비싼 시간에 속합니다. 주중에 쌓인 피로를 풀고 마음껏 나만의 자유를 누리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억만금을 준대도 포기할 수 없는 항목 중 하나인 셈입니다. 또 학생에게 아침 시간은 어떨까요? 언제 자도 잠은 늘 부족하고 잠깐 눈만 감았던 것 같은데 어느새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죠. 그래서 아침 시간은 황금 같다고들 말합니다. 물론 잘 쓰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뜻에서 시작된 이야기이지만 부족한 잠을 좀 더 자는데 쓰더라도 황금 같은 시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른하게 잠이 몰려오는 시간, 지금 당장 끝내야 하는 일이 없다면 한가한 시간, 직장 동료와 상사 뒷담화에 쓰는 시간은 어떻습니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고 돈을 준다면 선뜻 팔고 싶은 그런 시간이 있다면 여러분은 얼마에 파실 건가요?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는 17일 지난해 수능 세계지리 성적 재산정을 통한 추가 합격자가 629명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애초에 오답 처리됐던 수험생 1만8,884명의 3.3% 수준입니다. 4년제 대학에는 430명, 전문대학에는 199명이 추가 합격한 것입니다. 오류를 바로잡고 629명의 학생이 ‘구제’됐으니 이제 논란은 수그러들까요?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향 지원했거나 아예 대학에 지원하지 않은 학생들이 대상에서 제외돼 반발이 거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세계지리 오류로 불이익을 봤다고 여기는 수험생들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도 준비 중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과연 ‘구제’란 표현이 적확한 것일까 하고 말이죠. 고3, 재수생 등을 포함한 수험생에게 본격 준비에 돌입하는 1년간은 이후의 인생이 걸린 분기점으로 여겨집니다. 때문에 다른 어느 순간과도 절대 맞바꿀 수 없는 시간입니다. 당시의 스트레스와 압박감 그리고 가족들의 안타까움, 걱정 등 치열하게 보냈을수록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커지기 마련입니다. 특히 수험생 부모는 당사자는 아니지만 당사자 그 이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종류도 다 열거하기 힘든 입학전형 분석부터 정성을 다해 올리는 새벽기도까지 그 속은 보지 않아도 까맣게 타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1년을 여기 헐값에 사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몇 명 구해주지도 못할 거면서 ‘구제’라는 표현을 남발합니다. 처음 정부가 방침을 발표할 때에는 상당수의 오답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면할 수 있을 것처럼 들렸습니다. 몇 가지 전제조건이 달려 있긴 했지만 정책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듯한 뉘앙스였습니다. 우선 ‘구제’받은 학생들은 그렇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구제받지 못한 학생들의 1년은 누가 보상할 것인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시간은 재화입니다.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입니다. 국회의원들은 4년을 위해 1년간 엄청난 노력을 경주합니다. 그 시간을 버리게 되었을 때의 고통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죠. 그러나 입장을 바꿔 나이 어린 고3 학생들의 1년도 소중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전형을 만들어 선발 방식을 다양화하겠다거나, 정책적으로 정시 비중을 낮춰 가겠다는 식의 거창한 대책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시험을 본 학생들이 점수에 따라 아웃사이더로 밀려나지 않을 수 있도록 ‘기본’에만 충실한다면 공식 교육 제도에 의한 불행을 막을 수 있습니다. 행정적인 실수를 저질러 놓고 피해자들을 구해준다고 하는 일방적인 시선에서 교육도 여전히 관치로 얼룩져 있는 분야라는 점을 실감합니다. 수능의 콘텐츠는 교육과정평가원이 구성한 교수, 중, 고등학교 교사, 그리고 몇몇 EBS 전문 출제자들 등에 의해 구성됩니다. 얼마 전 ‘8억 짜리 파스타’로 도마에 올랐던 그 기관입니다. 교육부는 일찍이 대학 서열화 철폐와 특성화, 그리고 인구 감소 시대의 트렌드에 걸맞는 맞춤화된 선택이 가능한 소수 정예 대학의 육성 등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학생들을 받는 과정에서는 수능이라는 제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열을 세우는’ 대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정량화된 평가가 사람들을 비교하기에 제일 편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의 신뢰성, 그리고 문제를 출제하는 기관의 적합성 등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과연 지속 가능한 제도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수능이 이대로 좋은지에 대해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끼리 토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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