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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분석] 건설사 워크아웃 이대로 좋은가

금융권 채권 회수·리스크 관리에만 급급… 되레 회생 발목<br>추가 자금지원 발뺀채 사업성 있어도 보류·중단 일쑤<br>공공 수주로 숨통 틔워보려해도 보증받기 힘들어 좌절<br>시스템 전반에 불신 퍼지며 "실효성 없다" 비판 고조

시공능력평가 순위 21위인 경남기업이 졸업 2년만에 다시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실효성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채권단의 무리한 채권 회수와 자산 매각을 막고 공사이행보증도 현실화해야 건설사의 재무구조가 개선될수있다는 지적이다. 워크아웃 또는 법정관리가 진행 중인 쌍용건설^극동건설^경남기업 사옥. /서울경제DB


지난 2009년 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선 한 중견 건설사는 지난 5년 동안 단 두 건의 주택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한 건은 단순 도급사업이고 다른 한 건은 땅을 매각한 대신 시공권을 받아 진행한 사업이었다. 수도권과 부산·대구 등 전국 곳곳에 사업부지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이 진행되는 동안 대부분의 땅을 팔아 사업할 부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일부 남아 있는 땅은 수익성을 이유로 채권단에서 사업승인을 내주지 않아 분양시기를 놓치기도 했다.

이 건설사를 퇴직한 한 직원은 "2~3년 전 분양이 잘됐던 대구나 부산에 분양만 할 수 있었어도 회생의 여지는 있었다"며 "지금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껍데기만 남았다"고 말했다.


시공능력평가 순위 21위의 경남기업이 2년 만에 다시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건설사 워크아웃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해 정상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워크아웃 건설사들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오히려 워크아웃이 시장 퇴출의 전 단계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들어 업계를 중심으로 건설사 워크아웃 전반에 걸친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김민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정책연구실장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가 기업의 부채를 줄여 연명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기업의 정상화보다는 채권단의 채권 회수에 우선순위가 있다는 게 건설업체 전반의 시각"이라며 "워크아웃의 취지에 맞게 운용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무리한 채권 회수, 구조조정 발목 잡아=건설업은 지속적으로 사업을 수주하지 못하면 현금흐름에 문제가 생긴다. 실제로 증권업계에 따르면 벽산건설ㆍ금호건설 등 구조조정 건설사들의 차입금 대비 현금흐름이 워크아웃 기간 내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조조정 건설사들이 신규 수주나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금융권의 과도한 채권 회수와 사업 리스크 관리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A건설의 경우 워크아웃 직후 채권단과 함께 10여개 예정 사업지를 검토했지만 대부분 사업에 대해 보류 결정이 났다.

A건설의 한 관계자는 "회사 내부는 물론 시장과 언론에서도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한 사업지도 채권단 심의에 들어가면 보류나 포기하는 것으로 결정됐다"며 "신규 사업을 진행하면 채권단에서 추가 자금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기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산매각도 마찬가지다. 구조조정 건설사들은 사옥이나 불필요한 자산을 매각하는 것은 감내할 수 있지만 워크아웃 이후 우량 자산을 포함해 웬만한 자산들이 줄줄이 매각됐다는 불만이 많다. B건설사의 경우 사업 예정지는 물론 당시 유일한 현금줄이었던 해외 유명 리조트를 매각하면서 현금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최민수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부분의 건설사들은 사실 해외나 공공공사 부문에서 경쟁력이 있는 업체들인데 사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 때문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이라며 "금융권도 업체들의 개발사업에 제동을 걸지 못했던 일말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정부와 금융권이 합심해 도움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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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보증도 불가능…사업 진행 어려워=결국 주택사업 등 민간 부문 사업이 채권단에 의해 번번이 발목 잡히면서 워크아웃 건설사들의 유일한 대안은 공공 부문 수주밖에는 없는 형편. 하지만 이 역시 보증 문제가 엮이면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현재 공사이행보증은 건설공제조합과 서울보증보험 등이 주로 맡고 있는데 워크아웃 등 구조조정 건설사들은 보증을 받아내기가 사실상 힘든 구조다. 가뜩이나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 건설사에 대해 현금 담보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 낙찰률 제한, 보증건수 제한 등으로 보증을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실제로 건설공제조합의 경우 공공공사 중 일정 수준 이하의 낙찰률을 기록한 공사에 대해서는 보증을 해주지 않고 있으며 보증수수료율도 건설업체 워크아웃이 시작된 2009년 이후 상향 조정했다.

결국 올 8월 시공능력평가 100위권 내 32개 건설사는 낙찰률 및 담보율 하향 조정, 신용등급별 보증인수 건수 제한 개정, 보증수수료율 인하 등 건설공제조합의 영업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정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워크아웃 실효 없다" 비판 확산=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시평 150위 이내 건설사 가운데 현재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곳은 총 24개사다. 이 가운데 쌍용건설ㆍSTX건설ㆍ한일건설ㆍ경남기업 등은 올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워크아웃이 시작된 지 5년이 지났지만 모기업의 지원 등을 통하지 않고 순수하게 워크아웃을 졸업한 업체는 이수건설이 유일하다. 또 풍림산업ㆍ임광토건ㆍ삼환기업ㆍ삼부토건ㆍ금광기업ㆍ대우산업개발 등 6개 업체는 금융권 주도의 워크아웃을 포기하고 법정관리를 거쳐 정상화가 완료됐다. 채권금융기관의 워크아웃이 정상기업화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반증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올해 초 워크아웃 및 법정관리 업체(당시 23개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50%는 '도움이 된다'고 답한 반면 나머지 업체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22.7%)'라거나 '그저 그렇다(27.3%)'라고 답해 구조조정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이 만연해 있음을 보여줬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건설수주액이 14개월째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업체들은 기업 구조조정 때문에 신인도가 하락한데다 신규 사업에 대한 지원이 없어 오히려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어 불만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박홍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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