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치범 인도 첫 거절…'인권국' 과시

외교관계 보다 국제법 원칙에 '충실'

서울고법이 베트남 정부가 `반정부 인사'로 지목해 범죄인 인도를 요청한 우엔 후 창(55)씨에 대해 인도 거절 결정을 내림으로써 우리나라 첫 정치범 인도 거절 사례로 기록되게 됐다. 형사소송법상 고등법원 결정에 대해서는 항고할 수 없기 때문에 우엔 후 창씨는이날 중 석방돼 제3국으로 출국할 수 있게 됐다. 베트남 정부는 우엔씨가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범죄자이자 테러리스트라며 인도를 요청했지만 법원은 우엔씨가 해외 망명정부의 `민주투사'로 판단해 국제법 원칙에 따라 인도를 거절했다. 이번 결정은 국내 최초의 정치범 인도청구 사건에 대한 결정으로, 최근 우리나라의 교역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베트남과 경제적, 외교적 관계 발전 보다는 국제법의 기본원칙인 `정치범 불인도 원칙'에 더 큰 비중을 둔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국제법 이념을 토대로 1988년 8월 제정된 범죄인인도법 8조에는 `정치적 성격을지닌 범죄이거나 그와 관련된 범죄의 경우 해당 범죄인을 인도해서는 안된다'고 규정돼 있다. 또 이 결정에는 테러행위와 관련한 국제조약, 유엔(UN) 안보리 결의에 관한 국제법적 효력 등과 관련한 판단도 작용했다는 점에서 국제 인권국가 대열에 우리나라도 명실상부하게 합류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초 중국 민항기를 납치한 범죄자가 본국에 송환된 사례 등범죄인인도청구 사건은 여러 건 있었지만 정치범으로 인정돼 송환이 거절된 것은 처음이다. 재판부는 우엔씨가 미국에서 결성한 `망명정부'는 베트남 공산정권을 타도하고 자유민주주의 정부 수립을 목적으로 한 정치 기구이며 그가 베트남 자유민주주의 정부 수립에 참여한 이래 지금까지 당수로 재직한 사실 등을 인정해 우엔씨가 정치범이며 인도대상 범죄도 `정치적 성격의 범죄'라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우엔씨가 베트남에서 국가 전복을 꾀해 폭약을 구입해 테러행위를 감행하려고 했다는 점도 "인도청구 대상 범죄는 대부분 예비ㆍ음모 단계에서 적발돼시설이나 사람에 대한 어떤 피해도 발생하지 않아 정치범 불인도 원칙의 예외에 해당하는지 의심이 든다"며 베트남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우엔씨가 국가 전복을 노리는 `테러리스트'인지 박해를 피해 해외에서 반정부활동을 펼치는 `반정부 민주 투사'인지에 대한 판단에서 법원은 반정부 인사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법원이 이 같은 판단을 내린 데는 일제 강점기 시절 김구 선생과 안창호 선생, 이승만 전 대통령 등 국내 독립투사들이 중국ㆍ미국 등 해외 각지에 망명정부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했던 국가적 경험도 직ㆍ간접적으로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 우엔씨측 변호인인 권용석 변호사는 "사법부가 인권과 정의의 차원에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번 결정으로 우리나라가 인권국가로서의위상을 높일 수 있고 긴 안목에서 보면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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