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준 한국오키시스템즈 대표(53·사진)의 기억 한편에는 을지로 일대의 작은 작업장에서 시끄럽게 돌아가던 인쇄 기계 소음이 생생하다. 20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인쇄업자였다. 장남인 유 대표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23일 서울 서초동 한국오키시스템즈 본사에서 만난 유 대표는 "프린터 업계를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운을 뗐다. 지난 1984년 지금의 한국후지제록스를 시작으로 프린터 업계에만 자그마치 28년째다. 이만하면 고집스런 '외길' 인생이 아닐 수 없다. 유 대표는 "비록 아버지의 일을 잇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일도 하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아직도 업무 관계로 충무로 일대를 돌아볼 때면 지난 시절 아버지의 뒷모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런 유 대표는 취미조차도 인쇄업을 닮아 있는 '사진'이다. 운명처럼 다가온 일이지만 그에게 있어 '프린터'는 충분히 매력적인 분야다. 대학 졸업 후 잠시 몸담았던 제2 금융권에서는 미래를 발견하지 못했다. 유 대표는 "무형의 상품으로 영업을 한다는 게 답답하게 느껴졌다"며 "제록스에서 제대로 된 상품을 가지고 영업에 뛰어들었을 때 비로소 사회에 첫발을 들인 기분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1980년대는 프린터는커녕 복사기조차 귀한 시대였다. 그는 "1980년대에 복사기는 사무실 내 첨단 제품이었다"며 "웬만한 규모의 기업들은 사무실에 복사기가 설치되는 날 전체 직원들이 모여서 교육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제품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에게 복사기 영업은 하나의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제록스에서만 15년여를 일했지만 그는 엡손에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그가 엡손으로의 이직을 제안 받은 1998년은 외환위기 이후 온 나라가 위기감과 불안감에 휩싸였던 시기다. 하지만 유 대표는 당시 한국 법인이 설립된 지 1년도 채 안 돼 미래가 불투명했던 엡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본 엡손의 컬러프린터를 본 탓이다. 그는 "엡손의 잉크젯 컬러프린터 출력을 본 순간 강렬한 색상이 충격으로 다가왔다"며 "그 기억이 엡손으로의 이직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프린터에 대한 애착은 유 대표의 삶을 이끈 동력이었다. 그는 "프린터 분야에서의 28년간 한순간도 지루했던 적은 없었다"고 단언했다. 유 대표는 일본계 기업 현지 대표로는 몇 안 되는 '한국인'이다. 모기업이자 세계적인 프린터 전문기업인 일본의 '오키프린팅솔루션'은 유 대표를 '누구보다 한국 프린터시장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일본 본사는 커뮤니케이션이 수월한 일본인을 주재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유 대표를 선택했다. 유 대표는 이제 막 6살이 된 한국오키시스템즈를 연평균 30% 가까이 성장시키며 지난해 매출 200억원을 달성, 본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냈다. 한국 프린터 업계 역사의 '산증인'이자 '베테랑'인 그였지만 한국시장 공략은 쉽지 않았다. 현재 한국 프린터시장은 삼성∙휴렛팩커드(HP)∙캐논∙엡손 등 소수 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한정된 시장을 놓고 국내 대기업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과 경쟁하다 보니 후발 주자들이 끼어들 자리는 거의 없다. 유 대표는 "경쟁 업체들이 40~50년 역사를 가지고 시장을 이끌다 보니 시장 장벽이 높고 접근 방법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시장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유 대표는 '기업용 A3 컬러프린터'라는 특화된 시장을 집중 공략했다. A3 컬러프린터는 설계도를 작성하는 일이 많은 공공기관이나 디자인 관련 기업에서의 수요가 많다. 한국오키시스템즈는 '가격 대비 빠른 프린팅 속도'를 내세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국내 A3 컬러프린터시장에서 올 상반기 20% 점유율을 달성하는 등 짧은 시간 안에 국내 프린터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2005년 설립 후 6년, 여타 기업들과 비교하면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대내외적인 위기를 겪기도 했다. 2009년은 프린터 업체는 물론 전세계 기업들에 매출 악화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시기였다. 당시 모기업인 일본의 오키프린팅솔루션도 예외 없이 각 지사 대표에게 구조조정을 지시했다. 하지만 유 대표는 아시아권에서는 유일하게 모기업의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시장은 다시 일어서기 마련이고 그때가서 새로운 사람을 뽑아 우리의 비즈니스 환경에 적응하도록 만드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며 "기업의 연속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직원들에게 회사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의 사기를 우려해 당시 본사의 구조조정에 관한 지침을 함구했다. 유 대표는 불과 6개월 만에 그의 결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본사에 증명했다. 2009년 국내에서 많은 외국계 프린터 기업들이 환율의 영향과 수요 하락으로 역성장을 기록할 때 한국오키시스템즈는 안정적인 성장을 보였다.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아시아 지사들은 지난해까지도 프린터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다. 유 대표는 "홍콩 법인의 경우 법인 폐쇄까지 고려할 정도로 구조조정의 후폭풍을 겪었다"며 "영업은 특히 사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유 대표는 모노프린터 부문에도 오키 프린터의 영향력을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유 대표는 "기존에는 모노프린터는 컬러프린터를 팔기 위한 툴로만 여겨졌다"며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모노프린터 자체가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오키의 모노프린터도 2009년부터 판매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며 "A3 모노프린터 신제품을 중심으로 새로운 파이를 창출해갈 것"이라고 시장 확대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유 대표는 한국오키시스템즈 성장에 대해 3개년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는 "3년 후 현재 매출의 2배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며 "3년 후에는 컬러프린터시장 점유율 10%를 오키 프린터가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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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오키시스템즈는 한국오키시스템즈는 일본의 세계적인 프린터전문기업인 '오키프린팅솔루션'이 지난 2005년 설립한 한국 법인이다. 복합기∙컬러프린터∙모노프린터 등 신제품을 대거 출시하며 적극적으로 한국시장에 진출, 설립 1년 만인 2006년 2∙4분기에 국내 컬러레이저프린터시장 점유율 3위를 달성했다. 본사인 오키프린팅솔루션은 세계 120개국에서 컬러프린터를 판매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현재 이 회사는 컬러프린터 제품으로 스페인시장 점유율 1위, 영국∙덴마크∙벨기에∙아일랜드∙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시장 점유율 2위를 달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오키시스템즈가 공공기관 및 전문가용 프린터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 인쇄 산업의 핵심인 충무로에 A3 컬러프린터를 연이어 납품했으며 설계 업무가 필요한 공공기관, 엔지니어링 업체, 건설회사 등을 대상으로 점차 점유율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이에 대해 유동준 한국오키시스템즈 대표는 "2009년부터 성장세를 타기 시작한 A3 모노 프린터시장에서도 오키 프린터의 저력을 입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오키시스템즈가 내세우는 특징은 '발광다이오드(LED) 기술'에 있다. 이 기술의 장점은 프린터 내부 구조가 간단하면서도 내구성이 좋다는 데 있다. 유 대표는 "실제 오키 프린터를 설치한 기업들에서 기계 자체의 내구성에 문제가 생겨 AS를 요구하는 일이 거의 없다"며 "가격 대비 프린터 출력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내부 구조의 안정성도 함께 고려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LED 프린터 신제품을 잇따라 출시하면서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번에 출시된 신제품은 A3 컬러프린터 및 A4 복합기, A3 모노프린터 등 4종이다. 이들 모델은 빠른 인쇄 속도와 선명한 그래픽을 바탕으로 그래픽 문서나 도표 출력이 많은 사무실 및 전문가 사용자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오태수 한국오키시스템즈 본부장은 "프린터 출력 기능 외에도 절전 기능과 대용량 카트리지를 적용하는 등 경제성과 환경적인 측면을 모두 고려했다"고 밝혔다. 유 대표는 "설립 초기에 비해 현재 3배 이상의 매출 규모를 달성했으며 향후 3년 안에 지금의 2배에 달하는 매출을 이뤄낼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
유동준 대표 "목표 맞춰 일하는 단순한 바보 돼라" 조언 유동준 한국오키시즈 대표는 자타 공인의 '프린터 비즈니스 전문가'다. 평범한 사원에서부터 외국계 기업의 국내 법인 대표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비결을 묻자 그는 "영업에는 요령 같은 건 없다"고 단호히 얘기했다. 영업은 부지런하고 거짓 없이 일하면 어떤 내용이든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은 제록스 신입사원 시절 만난 상사였다. 평소 성실한 성격의 유 대표이지만 제록스의 혹독한 트레이닝 코스가 이어지자 단 한 번 꾀를 냈다. 현장조사 없이 아는 내용으로만 시장조사 보고서를 제출한 것. 이를 단번에 파악한 당시 유 표의 직속 상사는 모두가 퇴근한 토요일 오후 그를 도로변 한복판에 떨어뜨려 놓았다. 그는 주말 저녁 텅 빈 사무실에 새로 작성한 보고서를 들고 나타난 유 대표를 홀로 기다렸다. 유 대표는 "당시 얼굴이 너무 화끈거려 몸 둘 바를 몰랐다"며 "그때의 부끄러움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유 대표는 청년들에게 "하루하루 작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다짐으로 살아라"라고 조언한다. 그는 긴 회사 생활을 이어가다 보면 슬럼프가 오기도 하지만 작은 목표를 달성하는 연습을 통해 슬럼프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 대표는 "목표에 맞춰 일하는 단순한 바보가 되라"며 "한 달만 그렇게 살아도 하루게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빠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업무에 대한 구조를 그리는 일이다. 유 대표는 "어떤 분야의 업무를 맡게 된다 해도 업무에 대한 구조가 머리에 그려지면 스스로 재미를 느껴가며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그는 리더십에 대해 '직원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명확히 설명했다. 그는 "함께 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리더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이라며 "리더라고 언제든 옳은 일만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조직력을 응집시켜 극대화 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