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인터뷰] 노승일씨 "현역 바둑평론가로 영원히 남고 싶어"

20여년간 서울경제에 바둑칼럼 연재 노승일씨 "바둑 관전기도 문학의 한 장르"<br>1970년 '월간 바둑' 기자로 첫발… 간결한 문장에 스토리텔링 가미<br>소설 '올인'은 20쇄까지 찍기도


"프로기사 출신으로 1990년대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프로 도박사가 된 차민수씨를 소재로 한 소설 '올인'으로 베스트셀러 작가도 됐지만 현역 바둑평론가로 영원히 남고 싶습니다." 지난 20여년간 서울경제신문에 주요 바둑대회 관전기를 연재해온 노승일(76ㆍ사진) 바둑평론가는 "아직도 주요 바둑대회는 꼭 현장에서 관전한다"며 이 같은 소망을 밝혔다. 1970년 한국기원이 발행하는 월간 '바둑'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노씨는 1988년 복간한 서울경제신문이 1990년부터 동양증권과 공동 개최한 '동양증권배 세계바둑선수권전' 관전기를 신문에 실으면서 바둑평론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한중일 3개국에서 각각 세계바둑 타이틀전이 열렸는데 동양증권배 기전은 국내 최대 규모였다. 1992년 17세의 나이로 혜성같이 나타난 이창호 6단이 일본 바둑계를 주름잡던 중국 출신의 노장 린하이펑(林海峰) 9단을 격파하고 제3기 기전에서 우승, 지금으로 치면 김연아ㆍ박태환만큼의 인기를 누리는 국민적 스타가 됐고 동양증권배의 인기가 다른 주요 종합일간지 바둑대회를 압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간결한 문장, 현장성에 스토리텔링까지 가미한 그의 관전기도 동양증권배의 인기에 일조했고 후배들에게 '바둑평론의 교본' 역할을 했다. 노씨는 "바둑평론은 자칫하면 딱딱하고 재미없는 글이 되기 쉽다. 수를 잘 놓는다, 못 놓는다는 수준에서 벗어나 프로기사와 기단을 취재한 뒷이야기 등을 섞어 쓴 것이 인기 비결"이라며 바둑관전기도 문학의 한 장르임을 자부했다. 노씨는 1993년부터 3년여간 서울경제신문에 한국 바둑계의 스타 기사들을 소재로 한 칼럼 '관철동 시대'를 연재해 바둑 마니아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렸다. 관철동은 당시 한국기원이 있던 곳으로 '한국 바둑 역사의 산실'로 통했다. 그는 "서봉수ㆍ조훈현ㆍ차민수 등 프로기사들의 성장기를 다룬 칼럼을 주 3회 연재했는데 인기가 상당해 출판사들의 소설 출간 요청도 쇄도했다. 특히 차민수 프로의 성장기는 불에 기름을 부은 듯했다. 초판 1만부 이상 인쇄, 주요 종합일간지 광고 게재 등 깐깐한 조건을 내걸어도 출판사들이 받아들일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고 설명했다. 공전의 히트작은 '올인(들녁 펴냄)'. 프로기사에서 라스베이거스의 프로 도박사로 변신한 차씨를 소재로 쓴 소설인데 2003년 같은 이름의 드라마로 제작돼 20쇄까지 찍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40여년간 바둑평론가로 활동해온 노씨는 지금도 서울경제신문에 '한중일 바둑영웅전'을 연재하고 있다. 그에게 바둑의 묘미가 무엇인지 묻자 "생각의 힘을 키워주고 통찰력은 물론 종합적 사고와 결단력을 연마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조훈현 프로가 1989년 중국이 개최한 제1회 응창기 세계바둑대회에서 우승하고 귀국했을 때는 카퍼레이드까지 펼쳤다. 조치훈 프로가 일본 프로기단을 정복했을 때도 전국민이 열광하는 등 바둑이 국민을 하나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 등의 영향으로 바둑관전기의 인기가 예전같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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