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IB 코티피션 생태계 구축하자] <1> '글로벌 플레이어' 막는 패배주의

"외국계 못 당해" 지나친 콤플렉스… 마케팅 무력감에 IB성장 정체


상장사 경영진 "국내 IB 선호"와 동떨어진 인식

수요·공급자 균형가격 괴리… 수수료 인하만 불러


대형IB, 중소사 먹거리 눈독 '동업자 정신'도 부족


한국판 골드만삭스 탄생의 꿈은 지난 2009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금융당국은 기존 증권업·자산운용업·선물업·종금업·신탁업 등 5개 자본시장 관련업을 금융투자업이라는 단일 업종으로 합쳐 겸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자본시장통합법을 시행했다. 규제를 최대한 없애 증권사를 축으로 미국의 골드만삭스처럼 대형 투자은행(IB)을 키우겠다는 것이 자통법 탄생의 배경이다. 지난해에는 개정 자통법과 자본시장 발전 방안 등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IB 시장환경을 개선하려고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기대와 달리 지난 5년 동안 글로벌 시장에 명함을 내민 국내 IB는 찾아볼 수 없다. 일부 대형 IB들이 크로스보더(국경 간) 해외 딜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전체 IB 업계의 경쟁력은 한마디로 미미하다.

이유가 뭘까. 우선 국내 IB 업계에 만연한 '힘써봐야 외국계 IB를 못 당한다'는 패배의식이 문제다. 외국계 IB를 제외한 국내 증권사와 회계법인, 증권 유관기관 IB 관련 대표자 25명에게 국내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 빅딜에서 국내 IB가 외국계 IB에 딜을 빼앗기는 이유를 묻자 응답자의 72%가 브랜드 차이라고 답했다. 상장사 경영진이 외국계 IB보다 국내 대형 증권사를 선호한다고 답했고 대형사들을 선호하는 이유로 뛰어난 컨설팅 능력과 직원의 역량을 가장 많이 꼽은 것과는 동떨어진 인식이다.

실무 현장에서 외국계 IB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마케팅력을 보며 드는 무력감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한 증권사 IB본부장은 "외국계 IB는 지원팀이 있어 전날 고객이 술자리에서 궁금하다고 물어본 얘기는 그 다음 날 밤을 새워서라도 책상 위에 보고서를 올려놓을 정도"라며 "이런 차이 때문에 딜을 따내지 못하면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국내 IB 직원 문화가 성과보다는 조직원 간 친화력을 우선시하는 것도 업무 의욕을 떨어뜨리고 업계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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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외국계 증권사 대표는 "외국계에서 일하다가 국내사로 이동한 임원들은 대부분 실패했다"며 "성과보다는 그룹사의 딜을 챙기거나 사내 정치를 통해 조직을 장악한 사람들이 승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 적응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수시장에서 성장해야 하는데 국내 IB들은 서비스의 실수요자인 상장사 경영진의 수요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사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인 IPO 시장에서 상장사가 생각하는 주관사 선정 기준(외국계 제외 25명)을 물었을 때 국내 IB는 증권사의 명성(80%)과 수수료(64%)가 중요한 요소라고 봤지만 상장사(120개)는 압도적으로 서비스의 질(65%)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상장사들 입장에서 증권사의 명성(34%)과 수수료(16%)도 중요하지만 질 높은 서비스가 우선순위에 있는 것이다. 상장 이후 주관사에 만족스러웠던 점을 꼽아보라는 질문에는 성실한 피드백(41%)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아 사후 관리의 중요성도 확인됐다.

코스닥 기업의 한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상장이 끝나면 증권사들은 업무가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코스닥 기업 입장에서는 수수료를 더 내도 좋으니 기업 이미지 관리나 재무 컨설팅을 통한 주가 개선 등 추가로 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금융투자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비상장사를 상장시키기 위해서는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해 상장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컨설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권자본시장(ECM)에서는 적정 수수료를 놓고 큰 괴리를 보여 이미 채권시장은 균형가격을 찾기 어려운 시장으로 전락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IB 플레이어들은 적정 수수료로 발행금액의 0.25~0.3%(42%)를 가장 많이 선택했지만 상장사들은 0.01~0.05%(18%), 0.06~0.1%(13%) 등 가장 낮은 수수료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수요와 공급 간 괴리가 커 균형가격이 형성되지 않고 수요자에 끌려다니는 기형적인 시장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수요자가 원하는 가격에 맞추다 보니 적극적인 채권 세일즈와 서비스를 기대하기도 어려워졌다.

국내 IB 간 동업자 정신의 부족도 성장동력을 잃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계약을 따내기 위해 수수료 혈투를 벌이면서 공멸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IB 시장의 고질적인 병폐가 무엇인지를 묻자 IB 플레이어들은 이구동성으로 출혈 경쟁에 따른 저가 수수료 문제를 꼽았다. 결국 같은 업종에 일하는 사람들이 시장을 키울 생각은 안하고 파이만 더 크게 가져가려는 이기적인 시장이 됐다는 평가가 만연했다. 동업자 정신의 부족은 IB 시장 자체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얘기다.

외국계 IB의 한 대표는 "한국의 IB 시장은 1군 선수들이 3군 선수들의 경기에 참여해 저가 수수료로 승리를 쟁취하는 시장이 됐다"며 "대형 IB가 먼저 나서서 수수료 정상화를 위해 나서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IB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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