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업의욕의 위기

요즘 매출규모도 크고 이익도 많이 내는 중견기업인들이 모이면 어떻게 하면 손가락질 받지 않고 국내 생산시설을 중국이나 동남아국가로 옮기느냐가 가장 큰 관심거리라고 한다. 그러니까 국내에서 어떻게 해서든 경쟁력을 높이고 기업을 키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사람들 눈에 뛰지않고 기업기반을 기업하기 좋은 곳으로 옮길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해외 진출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저임금에 의존하는 노동집약산업은 이미 지난 70년대부터 값싼 노동력을 찾아 철새처럼 떠난지 오래다. 대기업은 대기업들대로 글로벌 경영차원에서 국내 투자를 훨씬 웃도는 해외투자를 지속함으로써 국내 생산보다 해외생산이 훨씬 많은 기업들이 적지 않게 생겨났다. 여기까지는 임금상승과 세계화라는 여건변화에 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사업 기반이 튼튼하고 이익도 많이 내고 있어 아직까지 해외진출의 필요성이 그다지 크지 않은 중견기업들조차 해외로 나갈 궁리를 하고 있는 배경은 좀 다른데 있다. 빠른 임금상승과 노동불안, 각종 규제등을 감안할 때 비젼이 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국내에서 기업하는 재미가 없거나 `더이상 국내에서 기업을 하기 싫다` 것이 더 근본적인 동기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비젼이 없기도 하지만 기업인으로서 긍지와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곰곰이 따져보면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과장한다면 국내 기업들은 사면초가 형국이다. 가령 노동계로부터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악덕업자, 환경단체로부터는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 소비자단체로부터는 소비자를 속이는 부도덕한 존재, 개혁론자들로부터는 불투명하고 믿을수 없는 대상등 다양한 이유와 명분으로 곳곳에서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기준에 비추어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바뀔 때 마다 개혁바람의 마녀 역할을 하기도 지겹게 느껴질만도 하다. 해외로 나가서 사업을 계속 할 수 있는 기업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라는 생각도 든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공장을 헐고 차리리 모텔이나 지어 편하게 돈 벌고 싶다는 기업인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하기가 싫어진 기업인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몇 년간의 극심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룸사롱과 학원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국세청의 자료는 기업인들의 이 같은 반응이 현실적인 근거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조업과 같은 정상적인 기업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반면에 룸사롱 모텔과 같은 퇴폐향락 산업은 호황을 누리는 기막힌 현실에 좌절하고 흔들리는 기업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손쉽게 돈 벌어 떵떵거리고 살수 있는 길이 많은 풍토에서 굳이 어려운 방법으로 돈을 벌려고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잘되는 기업은 해외로 나갈 궁리에 몰두하고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차라리 모텔이나 하고 싶어하는 병적인 풍토속에서 경제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가 목표라면 부가가치를 낳는 건전한 기업활동이 조장되고 기업의욕이 살아나야 한다. 망가진 공교육에 기생하는 학원이나 룸사롱 모텔 같은 소비성 서비스업으로는 결코 2만달러로 갈수 없기 때문이다. 서비스업도 중요하다. 그러나 내용도 중요하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제조업의 비중은 줄어들고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의 지적대로 과외 선생 몇 명 늘어난 것을 가지고 산업구조가 선진화되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정상적인 기업인들이 좌절하지 않고 신바람나서 기업할 의욕을 갖도록 하는 것이 국민소득 2만달러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 아닌가 싶다. <논설위원(경영博) sr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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