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인류의 첫 비행을 시연했던 라이트 형제는 21세기 초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첨단 헬기나 스텔스기 따위를 상상이나 했을까. 오늘날의 항공 기술자들이 꿈꾸는 22세기형 항공기는 어떤 모습일까.
파퓰러 사이언스는 세계 항공우주계의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전문가 7명이 지난 4월 모여앉아 자유롭게 펼쳐놓은 비행의 미래에 관한 흥미로운 얘기들을 정리했다.
◇가상현실이 항공여행을 해체시킬까= 전후 최고의 항공기 설계자로 평가받는 `급진적` 엔지니어 버트 루탄의 느닷없는 발언으로 토론은 시작됐다.
“20년 내에는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 마주앉은 것처럼 악수하고 포옹할 수 있는 가상현실 시대가 될 텐데 누가 거대한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까지 가겠어요.”
베테랑 파일럿 출신인 보잉의 연구책임자 조지 무엘너가 루탄의 말에 즉각 반박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직접 느끼고 체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는 따라갈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루탄이 제기한 가상현실 논쟁이 미래 항공의 모습을 예측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분명했다.
가상현실 기술의 발전은 이제 막 항공기의 인터페이스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시계 제로의 상태에서도 조정석에서 창공을 훤해 내다볼 수 있는 몰입형 가상현실 인터페이스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에어택시`와 무인항공기 시대가 열리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항공기를 직접 조정할 수 있게 된다.
◇`737번 버스`는 이제 그만= 대형 항공기를 이용하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하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공항 안전문제도 그렇다.
나사(NASA)의 에어택시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마크 무어는 “앞으로 상당수의 고객이 `737번 (보잉) 버스` 대신 에어택시를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수십개의 지역공항을 활용한 소형 항공기 네트워크는 보다 효율적일 뿐 아니라 9ㆍ11과 같은 테러에 대해서도 방어력이 높다는 게 무어의 주장이다.
물론 일반 조종사들은 소형 항공기라고 해서 비디오게임처럼 쉽게 조종할 수 있겠느냐고 손사래를 친다. 그러나 GE의 엔진전문가 마이크 벤자카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토론 멤버들은 “컴퓨터 기술을 능가하는 비행술은 없다”고 단언한다. 소정의 훈련만으로도 자동 항법장치로 A지점에서 B지점으로 비행기를 운항하게 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점점 새를 닮아가는 비행기= “이륙과 운항시 날개의 모양이 달라지는 항공기가 탄생할 겁니다. 다시 말해 비행기가 예전보다 훨씬 더 새의 날개방식에 근접하는 것이죠.”
벤자카인은 공기역학적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새처럼 날개모양을 바꾸는 비행기의 모습을 설명했다. 하지만 개인용 수직이착륙기(VTOL), 일명 `에어카`의 시대는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개인용 VTOL은 헬기의 비상 자동회전 능력이 부족하고 활강도 할 수 없어서, 엔진이 고장나기라도 하면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주택가를 기습할 수 있다. 무어는 “에어카를 꿈꿔온 사람들은 차고에서 부품을 조립해 어떻게든 해보려고만 했지 기술에 대한 시스템화된 연구를 수행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준궤도여행은 최저수준 기술로?= 이들의 토론이 있기 1주일 전 유일한 초음속 민간 항공기였던 콩코드기의 운항을 중단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벤자카인은 “향후 수십년 내 콩코드보다 작은 비즈니스용 초음속 제트 여객기가 다시 하늘을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억만장자나 대기업이 태평양 횡단에 이상적인 초음속 여객기를 선호할 것이며 공기역학과 소음통제 기술의 혁신이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루탄은 한술 더 떠서 초음속을 뛰어넘는 극초음속, 준궤도 우주여행의 모습을 예측했다. 물론 이는 우주여행의 비용을 경제적으로 맞출 수 있느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주비행에 접근하는 데 있어 지금까지는 너무 고차원적인 기술만 고집하느라 터무니없는 비용에 허덕여왔다”라는 게 루탄의 주장이다.
◇도심하늘 종횡무진하는 무인항공기= 군에서 이미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무인항공기(UAV)는 민간 영역에서도 다각도로 응용될 전망이다. 밴 크기의 무인항공기는 도시간 화물수송 수단으로, 소형 무인항공기는 하늘을 나는 전령으로 활약할 것이다.
다만 루탄의 주장처럼 “무인항공기의 끔찍하게 높은 안전사고율”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때 가능한 얘기다. 무엘너는 “유인항공기 성장기의 동일 시점과 비교할 때 사고율이 더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며 “현재 기술수준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리=김문섭기자 cloone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