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인 것 같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퇴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미국을 방문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엘비스 프레슬리 저택을 찾았던 적이 있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그 자리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개다리춤을 춰 세계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물론 당시 우리 국민의 상당수는 고이즈미의 행동에 대해 사대적이라며 비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어쨌든 고이즈미의 이런 행동은 부시 대통령과 미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결국 일본이 의도했던 것을 얻을 수 있게 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달여 전에도 들었다.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의 전 외교정책보좌관인 스티브 예이츠를 국회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예이츠 전 보좌관은 고이즈미 총리가 부시 대통령과 야구하는 모습을 통해 미ㆍ일간의 친밀하고 긴밀한 관계를 과시했다고 한다. 물론 이를 통해 일본은 얻을 건 모두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가깝고도 먼 이웃 나라 일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고이즈미의 행동은 한편으로는 대중에게 ‘보여주는 정치, 그리고 보이는 정치’를 생각하게 한다. 두 정치가 일치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는 어떨까.
우리 사회는 ‘정치 과잉’이라 할 정도로 사회의 이목이 정치에 집중돼 있다. 그리고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정치인이 나름대로 국민에게 자신의 정치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나 이들 중 국민에게 제대로 보이는 정치인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특히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러 대선주자가 국정 운영 비전과 정책 등 자신의 정치를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둘러싸고 한치의 양보 없는 사생결단을 벌이고 있다. 이 와중에 정제되지 않은 막말이 춤추고 서로를 헐뜯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얼굴을 찡그릴 뿐이다. 분명한 건 대선주자가 보여주려는 정치는 이게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보여주는 정치’와 ‘보이는 정치’에 괴리가 발생한 것이다.
또한 주자들마다 국민의 이목을 끌기 위해 각종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대부분 우리 경제를 한순간에 살리고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도약시키겠다는 장밋빛 약속이다. 이 중에는 표를 의식해 재정이나 국가 경제를 도외시하고 수조, 수십조원에 이르는 사업들이 남발된 경우도 있다. 한마디로 실현 가능성이나 실효성이 미지수인 ‘인기 영합주의, 포퓰리즘’ 정책인 셈이다. 이 역시 대선주자들이 보여주려는 정치는 아닐 것이다.
대선주자들과 정치인들이 화려한 수사로 자신을 보여주려 하기보다 국민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되돌아봤으면 한다. ‘보여주는 정치’와 ‘보이는 정치’ 사이에 차이가 없을 때 우리 정치 역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