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스타인 미국 버지니아대 평가교수는 자신의 저서 「대통령의 경제학」(김영사 펴냄)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루스벨트에서 클린터에 이르기까지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경제정책을 치밀하게 해부하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공상적인 경제이론이 무모한 신념과 잘못된 경제상식으로 무장된 정치인들에게 차용되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재앙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스타인 교수는 이어 이런 풍자적인 해석을 던지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가끔 선거에서 진 정당이 정권을 잡는 것이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보다 겸손할 수는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 역대 대통령들이 실업과 인플레이션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심도 있게 분석하면서, 정부에서 추진한 대부분의 정책들이 과연 어느정도의 실효성을 거두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미국경제는 지난 반세기 동안에 많은 시련 속에서도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그간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한 사람들을 무조건 매도하자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일관되게 취하고 있는 입장은 정통적인 보수주의 경제학이다. 때문에 저자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일부인 케인스주의 경제학자에게 비판적인 한편, 레이거노믹스의 기초가 된 공급위주 경제학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허버트 스타인 교수는 『이처럼 총수요를 다루는 정부정책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음에도 미국 경제가 좋은 결과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민간 경제의 효율성의 결과였다』고 강조한다.
실제 1929~82년 사이 미국의 총생산은 연 평균 3%의 성장을 기록했고, 미국인들의 생활수준은 급격하게 상승했다. 빈곤층의 비율은 극히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부가 통화정책을 더 잘 다룬다면 민간경제는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다는게 저자의 진단이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이제까지의 미국경제는 자유방임주의 경제도 계획경제도 아닌 혼합경제였다. 내용적으로 보자면 미국경제는 크게 세가지로 구성된다. 생산과 소득의 초기분배를 관장하는 자유시장, 안정적인 경제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정부의 거시경제정책, 빈곤층에 대한 정부의 보조조치들이 그것이다.
물론 저자는 역대 정권의 경제정책이 전부 실패했다는 식의 주장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정부의 매우 적절한 기능은 어쩌다 중간소득 계층(특히 노년층)에게 대규모로 소득을 이전하는 결과를 낳았고,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결국 노동인구의 담세율을 크게 올릴수 밖에 없었다는 것. 국민 저축의 상당 부분이 점점 더 재정적자로 흡수된 것도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고 자유시장에 대한 과다한 정부 간섭도 환경변화에 따른 경제의 적응능력을 크게 떨어트리는 결과를 빚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특히 루스벨트나 케네디 대통령의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케인스 이론에 많은 비판을 가하고 있다.
케인스 이론에 따르면 생산과 고용은 수요확대를 위한 정부의 재정정책, 특히 충분한 정부지출이나 대규모 재정적자를 통해 바람직한 수준까지 올려놓는 것이 가능하다. 또 노력만 하면 그런 결과를 가져오는 데 필요한 정부지출 수준이나 재정적자 수준을 미리 알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런 자신감에 케인스 이론의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케인스 이론을 맹신한 결과 정치인들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즉 넓은 범위 안에서) 재정정책을 마음대로 선택했다는 것. 다시말해 그들은 케인스식 이론이 허용하는 한 매우 다양한 규모의 정부지출이나 재정적자를 통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것. 이같은 상황에서 그들은 직업(정치인) 특성상 더 많은 지출, 더 많은 적자, 더 낮은 실업율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책 결과를 사전에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그 전에 비해 정부 규모는 더 커졌고, 경제성장은 더 느려졌고, 인플레이션은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이같은 진단 때문에 저자는 경제정책을 입안할 때 가장 중요한 대목은 「사회적 합의」라고 주장한다. 경제논의 자체는 결코 특정 정당의 견해를 반영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며, 경제정책에 대한 중요도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하고 참여해야 하는 귀중한 부분이라는 얘기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이 책에서 계획경제가 국민들에게 보다 많은 부를 약속하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흔히 「산업정책」의 가면을 쓰고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계획경제는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민간경제를 방해할 뿐이며, 비효율적인 정부의 통화 및 재정기능을 개선하려는 필요성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전락한고 만다는 시각이다.
「대통령의 경제학」은 이처럼 미국경제만을 대상으로 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보수주의 경제정책의 흐름을 분석하면서 민간주도의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때마침 IMF 구제금융이라는 미증유의 한파 속에서 경제가 거덜난 경험과 이를 극복하려는 정부주도의 구조조정이 진행중인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도 배우고 느껴야 할 대목이 많은 책이다.
이 책은 서울대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43년간 경제 연론인으로 활동해온 권혁승 한국경제전략연구원 이사장이 번역했다. 권혁승 이사장은 한국일보에서 기자로 출발 경제부장, 편집국장, 논설위원 및 신문 편집인을 거쳤으며 서울경제신문에서 편집국장과 복간 발행인, 대표이사 사장,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현재 한국일보 상임고문으로 있다.
이용웅기자YYO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