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글로벌 시대의 기업경영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한국의 기업경영에 가치체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기존의 가치들이 부정되고 새로운 것만이 밝은 미래를 가져다줄 것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면 한 직장에서 동료 및 회사와 함께 자신이 성장한다는 것은 이제 옛 시대의 가치가 돼버렸다. 외국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취득해서 외국계 컨설팅회사에서 일하다 대기업 경영진으로 발탁되면 단기간에 큰 수입을 얻고 일찍 은퇴하는 게 직장인의 꿈이 됐을 정도다. 이는 한국기업의 경영방식이 일본식에서 미국식으로 급격히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이다. 기업경영의 형태는 개별 기업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느 나라의 모델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일본과 미국의 경영방식을 천편일률적으로 비교해온 것이 사실이다. 장기고용, 연공서열, 기업별 노조, 종업원 중시, 장기수익 중시, 상호출자에 의한 경영권 유지 및 사내이사제도는 일본식으로, 단기고용, 능력주의, 산업별 노조, 주주 중시, 단기수익 중시, 사외이사제도 등은 미국식으로 분류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같은 기준에서 볼 때 최근 한국기업은 고용형태 및 지배구조 측면에서 급속히 미국식을 지향하고 있다. 지난 80년대에 세계의 주목을 받고 한국기업이 참고해왔던 일본식 경영방식이 한계가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이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다. 먼저 장기고용ㆍ연공서열 등의 제도는 성장단계에서는 유효하지만 성숙단계의 기업에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일본식 경영의 핵심인 종업원 중시에 관해서는 그 자체가 문제를 안고 있다기보다는 그 정도가 지나칠 경우 조직내 관료주의가 만연하고 고객이나 주주에 대한 이해가 무시되는 단점를 안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기업이 현재 지향하고 있는 미국식 경영방법은 만능인가. 미국식의 내용을 간단히 규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주주이익 극대화를 위한 단기실적 평가시스템이라고 하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극대화는 기업의 당연한 목적이지만 그것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미국식 경영방식은 최근 엔론ㆍ월드컴 등의 분식회계 사건에서 보듯이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경영자가 관심을 지나치게 월가에 쏟아넣고 고객과 종업원을 소홀히 한 탓이다. 최고경영자(CEO)를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도 경영자와의 이해관계상 온전히 독립적일 수 없고 사내 경영분석에도 역부족인 경우가 많았다. 영업상 고객기업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는 회계법인은 본래의 감사업무에 충실하지 못한 한계점을 보였던 것이다. 중요한 점은 어떤 경영방식의 우월을 떠나 한국기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무엇이냐는 점에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분위기는 미국식 이상을 지향하고 있다. 단기적인 이익 위주의 경영방식이 기업성과를 높인 것은 틀림없지만 한편으로는 장기적 발전을 저해하는 것도 자명하다. 특히 고용형태에서 그점은 잘 드러나고 있다. 기업은 저비용 고생산성의 30대를 주로 고용함으로써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하나 그 결과 20대 청년실업과 40세 이하의 체감 정년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또한 코스닥 상장을 통한 한탕주의는 많이 힘을 잃었지만 새로운 형태의 단기지향주의가 대두되고 있다. 한국이 지향해야 할 곳은 일본이나 미국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외국기업의 장점을 도입함과 동시에 한국기업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장점을 살리는 형태가 아닐까 한다. 글로벌 경영의 핵심은 표준화와 현지화의 조화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인사조직과 같이 현지화가 중요시되는 부분에서는 우리의 상황에 맞는 시스템을 강구해야 한다. 미국식 경영방식이 마치 세계표준의 글로벌 경영방식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으나 한국기업의 경영방식을 세계에 전파함으로써 소위 글로벌 경영방식에 일조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해온 것을 부정할 게 아니라 자신감을 갖고 우리 기업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연구대상 기업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우리 기업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형오(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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