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규(부총리)호(號)’의 출범과 함께 재정경제부가 확 바뀐다. 전임 부총리 시절 잃어버렸던 정책의 리더십을 되찾기 위해 과거 경제기획원(EPB) 시절의 ‘돌격형’ 업무 스타일을 과감하게 도입하는 한편 론스타 사건 등으로 위축된 금융정책 라인에 대한 수술 작업도 조만간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적으로 조직의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한 차원이지만 세력이 쪼그라드는 재무라인을 중심으로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자칫 재경부 내 ‘EPB-재무라인’ 사이의 해묵은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설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EPB식 정책 스타일’ 본격화=과거 경제기획원은 개발도상 시대를 거쳐오면서 공격형 업무 스타일이 몸에 배어왔다. 지난 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짤 때부터 94년 재정경제원으로 바뀔 당시까지 막강 권력으로 고도성장을 이끌어왔다. 한덕수 전 부총리 취임 이후 이른바 ‘합리적 리더십’을 표방하면서 정책의 리더십을 여타 부처와 실세 장관들이 포진한 부처들로 넘기면서 재경부 관료들 사이에서는 예전 EPB와 재무부 시절에 대한 향수가 짙게 묻어 나기도 했다. 권 부총리의 취임 이후 흘러가는 기류를 보면 ‘추락하는 재경부’가 확 바뀌는 듯한 조짐이 벌써부터 드러나고 있다. 권 부총리도 공ㆍ사석에서 이 같은 의지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헌법 아니면 다 바꿀 수 있다”는 옛 EPB 식의 업무 스타일을 현실화시키려는 포석인 듯하다. 실제로 권 부총리는 20일 취임 후 가진 첫 기자단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EPB 업무 방식의 재경부 도입 질문에 대해 “경제 정책국이나 조정국 등에서는 EBP 스타일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조직 변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경제 정책국과 조정국은 다른 부처와 직접적으로 업무가 연계돼 재경부의 리더십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이다. 권 신임 부총리가 취임 일성으로 “정책추진을 위해서는 타 부처 실무자들도 불러서 논의하겠다”며 밝힌 것도 주목할 만하다. 경제 부처의 한 고위관료는 “아직 ‘권오규식 색깔’이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종전 부처별 자율주의보다는 재경부를 중심으로 정책의 속도를 높이고 이를 통해 청와대 및 당과의 정책 협조 무드를 강화하는 쪽이 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기획예산처와 건설교통부 등 그동안 각개격파식으로 이뤄졌던 각종 정책들이 재경부를 중심으로 조합되는 예전 재경원식 스타일이 재도입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금정 라인 더 추락하나=EPB 스타일의 중용과 함께 더욱 관심을 모으는 것은 ‘금융정책 라인’의 추락이 어디까지 이어질 것이냐이다. 재경부 내에서는 벌써부터 금정 라인의 대대적인 교체가 곧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 대두되고 있다. 현 금정 라인은 김석동 차관보를 축으로 임영록 금정국장-추경호 금정과장-김용범 은행과장-최상목 증권과장-정은보 보험과장 등으로 꾸려져 있다. 이중 절반 이상이 물갈이될 것이란 관측이 재경부 내의 ‘복도 통신’을 통해 회자되고 있다. 실제로 금정 라인의 경우 핵심 당사자들이 현재 론스타 사건에 직ㆍ간접적으로 연결되면서 안팎에서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왔다. 시장에 대한 장악력도 현저하게 퇴색돼 있다. 이에 따라 일부 국ㆍ과장의 경우 후임자 명단까지 구체적으로 떠돌고 있을 정도다. 일부에서는 EPB 출신이 일부 금정 라인까지 접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지만 이는 조직적인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 부처의 한 고위관계자는 “권 신임 부총리는 본인의 의지 여부에 상관 없이 상당 부분 EPB를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을 것이며 당ㆍ청과의 관계도 이를 통해 설정될 것”이라며 “다만 이 속에서 금정 라인이 얼마나 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전체 정책의 색깔을 상당 부분 결정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