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밝은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모습은 안 보이고 의혹만 난무한다.” “대학 교육 문제 해결 등 우리에게 필요한 대안을 보여주는 후보를 뽑고 싶은데 마땅한 후보를 찾기 힘들다. 참말로 첫 투표하기가 너무 혼란스럽다. ”
그동안 엄청난 사회적 논란을 야기해온 ‘BBK 의혹’과 최근 이뤄진 검찰수사 결과 발표 후 또다시 정치공방이 거세지면서 생애 첫 투표를 앞둔 새내기 유권자들은 정치권의 구태의연한 모습에 이처럼 상당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에 참여해 한 표를 행사하게 되는 새내기 유권자는 만 19~24세로 400만명에 이른다. 이는 총 유권자 3,767만명의 10%에 육박한다.
교내 방송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성균관대 사회과학 1학년 김원미(19)양은 “첫 투표가 대통령을 뽑는 것이라 무척 설레기도 했는데 정책 경쟁은 없고 상대방 의혹 들춰내기에 급급한 것 같다”며 “방송 토론에 출연해서도 서로 헐뜯기에 열 올리는 모습을 보니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가톨릭대 법학과 1학년 조윤경(19)양은 “자신이 왜 적임자인지 유권자에게 어필(호소)하기보다 상대방을 비방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이는 ‘참 이상한 선거판’인 것 같다”며 “툭하면 촛불집회니 뭐니 하지 말고 자신의 주장이나 공약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 힘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꼬집었다.
친구들 간 갑론을박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취업준비에 한창인 조모(24)씨는 며칠 전 술자리에서 학과 동기와 입씨름이 붙었다. “누가 더 깨끗하냐가 아니라 경제를 누가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문제”라는 친구의 말에 “위장 취업, 위장 전입 등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어떻게 뽑을 수 있느냐”며 말싸움을 벌인 것. 하지만 ‘딱 이 사람’이라 할 인물이 없다는 데는 서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1학년인 이기중(20)씨는 “처음으로 대통령을 뽑는다고 생각하니 책임감 같은 게 느껴진다”면서도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언론 보도도 꼼꼼히 살피지만 솔직히 어느 쪽 말이 진실인지 잘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인터넷에도 정치권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하다. 한 네티즌(닉네임 카마스터)은 포털 사이트 ‘다음’ 게시판에서 “선거기간 중에 규탄 집회라. 대선판 자체를 깨자는 것인가? 새내기 유권자들인 우리는 대체 무엇을 보고 배워야 하나”며 탄식했다.
한편에서는 더디지만 정치문화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도 있다. 언론사 시험을 준비 중인 송모(23)씨는 “더 이상 지역 구도에 기대 표를 얻으려는 경향은 줄어든 것 같다”며 “기업들에 대선자금을 요구하는 관행이 사라진 것도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공직자선거법 개정으로 유권자 연령이 만 20세에서 19세로 낮아져 올해 처음으로 유권자(지방선거 등 포함) 자격을 획득한 대상은 대부분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태어난 ‘호돌이 세대’로 62만명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