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재개발 진행 종로 '피맛골' 일대 표정

"서민 애환 달래던 곳인데…"<br>철거 앞둔 국밥집·목로주점등 아쉬운 발길 이어져<br>국내 첫 자장면집·한일관등 이전준비 분주<br>옛 정취 사라지고 국적불명 거리 우려높아

서울 종로 뒤편‘피맛골’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지난 16일 영업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은 중국음식점‘신승관(新昇館)’ 전경. 간판은 이미 떼어내 예전에 붙어 있던 흔적만 남아 있었다. \김동호기자

재개발 진행 종로 '피맛골' 일대 표정 "서민 애환 달래던 곳인데…"철거 앞둔 국밥집·목로주점등 아쉬운 발길 이어져국내 첫 자장면집·한일관등 이전준비 분주옛 정취 사라지고 국적불명 거리 우려높아 노희영 기자 nevermind@sed.co.kr 서울 종로 뒤편‘피맛골’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지난 16일 영업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은 중국음식점‘신승관(新昇館)’ 전경. 간판은 이미 떼어내 예전에 붙어 있던 흔적만 남아 있었다. \김동호기자 "여기 오늘이 마지막 영업이라면서요?" 지난 16일 정오 종로1가 뒷골목 피맛골. 우리나라 최초로 자장면을 소개한 것으로 유명한 중국음식점 '신승관(新昇館)'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마지막으로 맛을 보려는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재개발한다고 나가라고 하니 나가야죠. 하지만 지금까지 자장면 만드는 것만 알았지 다른 건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다른 데로 옮겨서 새롭게 시작할 엄두도 나지 않고…."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아 아들과 함께 3대에 걸쳐 이곳을 운영해온 장경문(54) 사장은 눈시울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 영업 소식을 듣고 찾아온 직장인 윤모(52)씨는 "회사에서 사고 치거나 사표 쓰겠다던 후배들을 데려와 고량주를 마시면서 뜯어말렸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봉급쟁이들의 애환이 서린 곳인데…"라며 아쉬워했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말이나 가마를 타고 다니던 종로 큰길을 피해 서민들이 마음 편히 지나다니던 길 '피마로(避馬路)'에서 유래한 '피맛골'. 600년 전부터 서민들의 배를 채워주고 목을 축여주던 국밥집과 목로주점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던 이곳이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사라지게 됐다. 신승관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 한일관 역시 오는 25일까지만 영업을 한다. 궁중음식인 너비아니를 일반 대중에 처음 선보이면서 1950년대부터 종로 일대 최대 맛집으로 꼽혀온 이 음식점은 강남으로 이전해 11월부터 영업을 재개할 예정이다. 스승의 날이었던 15일 한일관에서 열린 국립 세무대학 총동문회에 참석한 정규백(68) 전 경제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청춘남녀들이 선을 보면 이곳에서 식사를 하곤 했다"면서 "개인적으로도 여기서 집사람과 처음으로 데이트를 했는데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서운하다"고 말했다. 1937년 문을 연 이래 김구 등 독립운동가부터 대선 후보 시절 이명박 대통령까지 찾았던 청진동 해장국 골목의 터줏대감 '청진옥'도 7월이면 자리를 옮긴다. 가난한 예술가들과 문학청년들의 아지트였던 시인통신(詩人通信)은 이미 두 차례 이전을 했지만 또다시 떠나야 할 처지다. 피맛골 일대 재개발은 가급적 원형을 살리면서 진행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피맛골을 중간에 끊고 세워진 르메이에르 종로타워(청진구역 6지구)는 서울시의 피맛골 보존지침을 따랐다고는 하지만 옛 피맛골 거리 양쪽은 통유리로 둘러싸인 채 유럽형 베이커리 카페, 아이스크림 전문점 등이 들어서면서 예전의 정취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이 때문인지 서울시는 신승관 등이 위치한 청진동 청진구역 12~16지구에 대해 사업시행인가 조건으로 르메이에르보다 높은 수준의 피맛골 보존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진척이 더뎌져 내년에나 본격적인 철거 및 착공에 들어가고 완공은 2010년 이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개발업체 측에서 르메이에르와의 형평성을 주장할 경우 동일한 조건으로 인가를 할 수밖에 없고, 결국 나머지 피맛골도 물리적인 길만 남은 채 '정체 및 국적 불명'의 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부동산 개발업자는 "유럽 국가들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옛 도시를 복원하겠다고 나서는데 우리는 멀쩡한 과거 유산을 재개발 명목으로 없애고 있다"면서 "옛 모습을 남겨두는 대신 용적률을 높여주는 등 보다 적극적인 보존방안을 마련해 전통 보존과 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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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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