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5일 매출액이 500억원에 불과한 동일기업은 이사회를 통해 무려 22억원에 달하는 자사주 매입 결정을 내렸다. 매출액의 4.4%에 달하는 수치다. 이 회사는 다음날인 6일부터 시장에서 자사주를 매입하기 시작해 이달 20일까지 20만주, 24억원어치를 사들였다. 그런데 동일기연이 자사주 취득을 시작한 다음날인 7일부터 최대주주 손복조 대표가 보유 주식을 내다팔기 시작했다. 손 대표가 이날부터 이달 6일까지 장내 매도한 물량은 8만6,450주. 동일기연 자사주 취득 물량의 43%에 달한다. 매출 500억원의 미니 기업이 올 들어 자사주 매입에만 226억원을 투자한 반면 같은 기간 최대주주는 꾸준히 보유 주식을 팔아 치운 것으로 나타나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동일기연은 올 들어 자사주 179만여주를 매입했다. 총 투입금액은 226억원. 지난해 말 자사주 비중은 23.6%(190만1,717주)였지만 최근 44.3%(369만주)까지 확대됐다. 동일기연은 이것도 부족해 21일에는 자사주 20만주에 대한 추가 매입을 결정했다. 동일기연은 어떤 이유로 자사주를 지속적으로 매입하고 있는 것일까. 동일기연 관계자는 "자사주 매입은 주가안정을 위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주가 부양을 위한 수단으로 자사주를 사들였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동일기연의 이러한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동일기연의 손동준 대표 등 최대주주 지분은 52.3%(6일 기준)에 달한다. 여기다 자사주 비율이 44%이기 때문에 결국 유통물량은 전체 2%에 불과하다. 자사주 매입이 유통물량을 줄여 오히려 주가 상승에 역효과를 낼 수 있는데도 이를 강행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특이한 것은 동일기연이 자사주를 매입할 때마다 손 대표가 보유주식을 내다팔며 지속적으로 지분율을 낮췄다는 점이다. 실제로 손 대표의 지분은 36%(300만주ㆍ6일기준)로 올해 1월 초 47.7%(383만주)보다 11%포인트(83만주) 감소했다. 대주주가 지분을 팔면 회사가 자사주로 매입하는 '핑퐁거래'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유통물량이 적어 대주주가 지분을 매각하면 주가가 하락하기 때문에 회사가 자사주 형태로 물량을 인수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흔히 볼 수 있는 거래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동일기연은 앞으로도 자사주 매입을 꾸준히 이어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법상 자사주 매입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동일기연의 가용자금(배당가능 이익)은 753억원으로 아직도 531억원 정도가 남아 있다. 동일기연 관계자는 "자사주 매입한도 금액이 500억원가량 남아 있기 때문에 주가 부양을 위해 필요하다면 추가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할 수 있다다"는 입장이다. 증권사의 한 연구원은 "자사주 매입은 주가 부양이나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 이익소각 목적 등으로 매입할 수 있지만 대주주 지분율이 높아 적대적 M%A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자사주를 지속 매입하는 것은 드문 케이스"라며 "대주주가 필요에 따라 지분을 매각하더라도 회사가 자사주 형태로 매입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상장폐지 목적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지만 현행법상 자사주는 대주주 지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요건이 맞지 않아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동일기연은 EMI필터(전자파차단용필터로 PDPㆍLCDㆍLED TV 등 각종 전자제품에 탑재) 생산업체로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주요 납품처는 삼성ㆍLG전자 등이다. 동일기연 주가는 1만3,350원(21일 종가)으로 올해 초 대비 25% 상승했다.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522억원과 108억원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는 TV 전방산업 부진으로 매출액 236억원, 영업이익 39억원을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