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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다롄 조선소 청산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국내 채권단이 신디케이트론(공동대출) 형태로 STX다롄에 빌려준 4,000억원 규모의 자금 전부를 떼일 위기에 처한 것으로 드러났다.
담보 설정은 당국 허가사항인 중국 법체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자금을 빌려준 탓이다. 채권단은 그동안 STX다롄에서 손을 떼더라도 담보권이 설정된 약 2,000억원은 회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거짓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에 따라 당시 신디케이트론의 주관은행이었던 산업은행의 미숙한 업무처리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12일 중국 현지와 금융계에 따르면 산은·농협·우리·국민·신한은행 등 국내 채권단이 공동으로 STX다롄에 자금을 빌려주면서 설정한 담보권의 효력이 사실상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에서는 담보 설정이 회사와 은행 간에 이뤄지더라도 외환 당국에 신고와 허가를 받아야 인정되는데 국내 채권단은 이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지금까지 STX다롄에 약 4,000억원 안팎의 자금을 대출했으며 이 중 절반인 약 2,000억원은 부동산 및 설비를 담보로 설정했다. 이 때문에 채권단은 그동안 STX다롄을 청산하더라도 최소한 2,000억원 안팎의 자금은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4,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빌려주면서 가장 기초적인 현지 금융법률 시스템도 파악하지 못하고 일을 진행하면서 애꿎은 돈만 날릴 위기에 처했다.
STX다롄 협력업체의 한 관계자는 "국내 채권단은 STX다롄이 망하더라도 최소한 담보권이 설정된 2,000억원은 건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중국 채권단이 현지 법체계를 근거로 산은 등의 담보권이 효력이 없다고 나설 경우 반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당시 신디케이트론을 주관한 산은의 미숙한 업무처리에 대해 다른 채권은행들이 이의를 제기할 경우 논란이 될 수도 있다. 은행들은 신디케이트론의 특성상 담보권도 여신비율에 따라 일정 부분 갖고 있는데 모두 손실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 사업체에 돈을 빌려줄 때 가장 먼저 해 야하는 현지 법률 검토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도 문제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지난 7월 STX의 경영정상화 계획을 짤 때 STX 계열사들이 중국 은행에 지급보증한 약 7,000억원 규모의 금액은 청산을 대비해 반영했지만 담보권이 설정된 일반대출은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면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한 만큼 논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중국 채권단은 최근 STX조선 등 국내 계열사들이 지급보증한 금액에 대해 우리 측에 지급보증을 공식 청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채권단의 담보권 효력 상실과 함께 지급보증 해소까지 요청하면서 STX다롄을 공짜로 가져가려는 속내를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STX다롄 현지의 한 관계자는 "우리 금융 당국과 채권단이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대처해왔고 중국의 협상전략을 과소평가했다"면서 "공장 정상화의 타이밍을 놓치다 보니 이제 중국 측에 끌려다닐 일만 남은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STX다롄의 50여개 한국 협력업체들로 구성된 채권사협의회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집회를 열고 "3조원의 국부와 기술유출이 우려되는 STX다롄의 청산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는 최희암 고려용접봉 중국법인 사장은 "2007년 초기투자금 15억달러, 그동안 여신 14억달러 등 총 29억달러가 투자된 STX다롄이 우리 금융 당국과 채권단의 수수방관으로 중국에 통째로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며 고 호소했다. 그는 이어 "국내 채권단은 전체 여신 14억달러 중 3억~4억달러만 대출해줬기 때문에 적극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STX 계열사들이 지급보증한 7억달러(중국 측이 요청하면 무조건 상환)를 제외하면 중국계 은행이 빌려준 돈은 4억2,000만달러에 불과하다"면서 "그럼에도 채권단이 최소한의 국부유출 방지안을 만들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전했다.
채권사협의회는 이날 청와대에 STX다롄 정상화를 위한 민원을 제기한 데 이어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 등 유관부처에도 사태 해결을 촉구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