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벼랑끝에 선 철강업계

◎증설 경쟁으로 공급과잉… 재고쌓여 경영난 가중/중소업체 연쇄부도설도 고개 「최악의 97년」 우려/사업정리·M&A등 구조조정 가속화 전망철강업계가 「최악의 97년」을 맞이할 전망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수출침체와 경기하강으로 업종 구별없이 거의 모든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철강업체들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그동안 경쟁적으로 설비를 늘려왔으나 공급과잉으로 제품은 팔리지 않고 재고는 쌓여가고 있다. 판매난과 재고부담은 자금난으로 이어져 기업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굴지의 철강기업인 삼미가 특수강 사업의 상당부분을 포항제철에 넘기기로 한데 이어 한보그룹도 주력사업인 한보철강을 살리기 위해 부동산을 매각키로 하는 등 경영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말의 환영철강 최종부도 이후 철근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올해도 철근 공급과잉이 여전할 것으로 보여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업체를 중심으로 연쇄부도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80년 이래 이런 불황은 처음이다』며 『철강경기가 갑자기 나아질 가능성도 기대하기 어려워 상당수 업체들이 극심한 경영난에 봉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제철을 비롯한 대형 전기로업체 사장들은 지난해말 긴급간담회를 갖고 조업단축을 통한 철근감산 노력이 필요하다는데 기본인식을 같이했다. 그러나 이들의 회동 이후 철근업체들의 생산량은 전혀 줄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부업체는 누적된 재고해소를 위해 원가에도 못미치는 값에 제품을 덤핑판매하고 있다. 이같은 싸움이 상반기 내내 이어질 경우 돈줄이 넉넉치 못한 일부기업이 나가떨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감산에 반대하고 있는 모업체의 임원은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를 감안할 때 현재 7개에 달하고 있는 전기로 철근메이커의 수가 너무 많다』며 『경쟁을 통해 적정규모로 추려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철근업체들은 지난 80년대 후반부터 정부의 신도시건설 특수에 따라 철근 생산량을 크게 늘려왔으나 최근 건설경기가 급속히 냉각되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보그룹은 제일은행을 비롯한 4개 은행의 긴급금융지원(1천2백억원)에 이어 3천억원 규모의 부동산을 매각처분키로 하는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업계는 금융권의 특별지원과 한보그룹의 자구책에 힘입어 그동안 수차례 자금고비를 넘겨온 한보철강이 당분간은 어려움에서 벗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보철강의 빚상환 만기가 앞으로 속속 돌아올 예정인데 은행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한보에 특별자금을 지원해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보철강은 부채에 따른 이자로만 연간 5천억원 규모를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업계의 경영난은 시황변동을 예상하지 못하고 증설경쟁을 벌인데서 비롯됐다는게 업계의 자체 진단이다. 올해는 설비증설에 따른 경영난이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철강업체들이 올해부터 새로 가동에 들어갈 신규설비가 사상 최대 규모인 6백만톤에 달하기 때문이다. 포철이 오는 9월 제3후판 설비의 연간 제강능력을 60만톤 확충하는 것을 비롯해 ▲인천제철 전기로 1백20만톤(7월) ▲한보철강 전기로 3백만톤(8월) ▲동국제강 형강 전기로 1백40만톤(10월) 등 총 6백20만톤의 생산시설이 확충될 예정이다. 지난 90년 이후 국내 철강산업의 생산능력은 매년 2백만∼3백만톤씩 늘어왔으나 한해에 6백만톤 이상 늘어나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이들 설비가 준공과 함께 곧바로 생산량 증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가뜩이나 불안한 시황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지적이다. 게다가 이들 설비의 가동률이 90% 이상 올라가는 내년초부터는 공급과잉 현상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만만찮다. 이에 따라 업계 일각에서는 운영자금 조달의 한계에 도달한 중견기업들의 부도가 속출하고 경영난에 봉착한 일부 대형업체들까지 사업정리에 나서면서 기업인수합병 등을 통한 철강업계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한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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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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