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할인점에 가면 다양한 상품 구색에 놀라고는 한다. 우유 하나를 사려고 해도 그 종류가 많아 진열대 앞에서 머뭇거리기 일쑤다. 필자는 보통 팩 크기가 작은 탈지우유를 고른다. 진열대에서 우유를 고르는 순간 필자는 우유시장에서 소비자주권(consumer sovereignty)을 행사한 것이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우유를 골랐을 뿐인데 소비자주권 행사라니 독자분들 중에는 거창하게 얘기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소비자주권이란 다름 아닌 소비자가 가격기구를 통해 기업이 무엇을 생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화폐투표(dollar voting)를 의미한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국부론에서 “소비는 모든 생산의 유일한 목적이다. 생산자의 이익은 소비자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범위 안에서 고려돼야 한다”고 밝히면서 이 명제는 완전히 자명해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가 이것을 자명한 명제라고 한 이유는 그가 말하는 경제가 자유경쟁시장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스미스가 말한 전제조건인 자유경쟁시장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가. 우리 경제에는 여전히 독과점과 경쟁제한적 관행이 잔존하는 등 개선의 여지가 많다. 아직 스미스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원활하게 작동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
시장경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는 시장구조와 관행 외에도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 의사 결정에 필요한 경제적·기술적 정보를 제대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소비자는 사업자만큼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정보비대칭의 시장 실패를 치유하고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기제가 필요하다. 우선 소비자가 경제의 주역으로서 스스로 정보를 찾아 자기의 권익을 증진하고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똑똑한 소비자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울러 소비자 스스로 단체를 조직해 불매운동, 정보 제공 활동 등을 통해 소비자와 시장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 정부는 소비자 스스로 주권을 행사하도록 도와주는 소비자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소비자정책은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이 가능하도록 소비자정보와 교육 체계를 구축하고 소비자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안전ㆍ피해 구제와 같은 분야의 시스템을 잘 갖추도록 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소비자가 시장의 최종심판자가 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