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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11월 20일] 소문들-짐승

소문들(문학과지성사 刊)

1 창피(猖披)란 짐승이 있어, 무안(無顔)과 적면(赤面)사이의 좁은 골짜기에 산다 야행성이라 잘 눈에 띄지 않지만 간혹 인가에 내려와 쓰레기통을 뒤진다. 팔다리가 가늘고 귀가 뒤로 밀려서 비루먹은 곰처럼 생겼다 산정(山頂)을 좋아해서 오르다가도 꼬리가 무거워 늘 골짝으로 떨어진다 이 짐승의 가죽을 얻으면 얼간망둥이를 면할 수 있다 -중략- 3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말이 있으니 이를 무족마(無足馬)라 한다 인적 끊긴 지 오래인 인가의 굴뚝을 끌어안고 살다가, 성체가 되면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긴 혀로 수염에 붙은 침이나 귓속의 귀지를 핥아 먹는다 한 마리에 천 냥이나 하는 귀한 짐승이어서 특별히 이 짐승을 기르는 일을 업으로 삼는 자를 말전주꾼이라 부른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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