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해 태국 방콕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됐던 2002년 아시아 태평양출판협회 총회에 이어 올해 이렇게 인도의 역사적인 도시 델리에서 여러분을 다시 만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지난 8월22일부터 인도 델리에서 개최된 제10회 아시아태평양출판협회(이하 APPA) 총회에서 나는 개막 인사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했다. 총회 분위기는 언제나 그렇듯이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국제기구의 모임, 또는 국제회의의 분위기는 이처럼 대부분 부드럽게 시작된다. 그러나 자국의 이익이 걸린 문제가 논의되면 부드럽고 예의를 다하던 분위기는 순간적으로 반전되어 불꽃 튀는 논쟁으로 이어진다. 어느 나라 대표든 자국의 이익을 지키고 손해를 감수하지 않으려다 보니 때로는 고성이 오가는 등 첨예한 대립이 벌어지기도 한다.
다행히 이번 총회에서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직접 부딪치는 일이 없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회원국 대표들의 단순한 친목 모임 같은 분위기로 일관했다. 그러나 좀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자국의 이익을 위한 각국 대표들이 물밑접촉이 여전히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총회에 특별히 참석해서 APPA 출판포럼의 기조 연설을 한 페레비센스 IPA(국제출판협회) 회장은 취임 초부터 중국의 IPA 가입을 추진해 왔다. 그는 이번에도 중국을 IPA 회원국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를 곳곳에서 드러내었다.
중국 역시 IPA 가입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IPA를 움직이는 상임이사들 대부분은 중국의 가입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중국은 출판의 자유가 보장돼 있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 APPA 회장인 나의 직권으로 적극 추천한다면 중국의 가입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내가 APPA 회장이 되고 나서부터 IPA 회장은 중국의 IPA 가입을 위해 나의 협조를 여러 번 요청해 왔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가 IPA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APPA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여겨 추천을 망설이고 있다. 중국이 IPA 회원국이 되어 APPA에 무관심해진다면 APPA로서는 아시아권에서 가장 큰 시장 하나를 잃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APPA에서도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기 위해 일찍부터 APPA 회장국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거대한 시장을 배경으로 한 중국이 회장국이 된다면 APPA 자체가 중국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각국의 우려도 있어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이 되고 있다. 국제 기구에 있어 자국의 세력이 약화되는 것을 원하는 대표들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델리 총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은 예년과 달리 APPA 총회 유치를 위한 경쟁이 심해졌다는 점이다.
총회 참석차 출국하기 며칠 전 파키스탄으로부터 팩스 한 장이 왔다. 파키스탄 출협은 정부가 관장하고 운영하고 있어 APPA 회원국이 부담하는 회비 납부가 어렵다며 회비를 유예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그럴 수 없다는 답신을 보냈다. 회원국으로서의 지위와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회원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총회 도중 파키스탄 대표는 2005년 APPA 총회 유치를 신청했다.
그래서 “회비 납부조차 유예 시켜 달라면서 총회를 유치하겠다는 것은 이율배반이 아니냐”고 했더니 파키스탄 대표는 “총회를 유치할 수만 있다면 회비는 개인적으로라도 부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유치 신청은 유효하지만 그 결정은 회비 납부 후 임원회의에서 결정할 숙제라고 했다.
총회 순서 중에 `국가 보고`라는 항목이 있다. 각국 대표들이 자국의 출판상황과 도서 시장에 대해 설명하고 의견을 공유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시간이다. 각국 대표들은 이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국의 출판 상황뿐 아니라 도서시장, 심지어 관광과 산업에 이르기까지 자국을 홍보하고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것이 국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국 경우는 다행히 내가 APPA 회장을 연임하고 있는데다가 협성대학교 백석기 총장이 실무위원장을 맡고 있어서 국익을 지키는 면에서는 철옹성을 쌓은 셈이다.
<아시아태평양출판협회장ㆍ예림 경기식물원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