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0월21일] 알프레드 노벨


전쟁과 평화. 노벨의 삶과 죽음을 압축하는 두 단어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주인공인 동시에 노벨상이라는 불멸의 유산을 남긴 노벨은 어려서부터 극과 극을 오가며 자랐다. 1833년 10월21일 스웨덴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파산과 재기가 반복되며 어머니의 야채행상과 형들의 성냥팔이로 겨우 생계를 꾸려나갔다. 훗날 부친이 러시아에서 무기사업에 성공한 덕에 가정교사들로부터 개별교습을 받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수료가 정규교육의 전부인 것도 이 때문이다. 베니어를 발명한 건축가이자 무기 제조업자였던 부친의 사업이 크리미아 전쟁에 패배한 러시아의 주문량 격감으로 망해갈 무렵 노벨 가문은 석유라는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 소총 개머리판에 쓸 목재를 구하기 위해 방문한 바쿠 지역의 거대한 유전에 투자한 덕분이다. 원유를 운반하는 파이프라인과 유조선을 처음 만든 사람도 노벨 형제들이다. 노벨 자신은 다이너마이트와 ‘폭발성 젤라틴’, 무연화약을 잇따라 발명, 세계 각국에 90개 무기 및 폭약공장을 소유한 재산가로 떠올랐다. 어디서든 연구하기를 좋아했던 노벨은 폭약뿐 아니라 광학ㆍ기계공학ㆍ생리학과 수혈에 이르기까지 모두 355종의 특허를 등록했다. 다국적기업 총수로서, 발명가로서의 삶에 만족하던 노벨은 1888년 대전환의 계기를 맞았다. 바로 윗형의 죽음을 노벨의 사망으로 착각한 파리의 한 신문사가 잘못 내보낸 ‘죽음의 상인 노벨 사망’이라는 부고(訃告) 기사를 보고는 인류를 위해 공헌한 사람들을 위해 재산을 바치겠다고 결심한 것. 노벨재단과 노벨상이 탄생한 연유다. 평생 독신으로 살다 59세인 1896년 하직한 노벨의 사망일인 12월10일에는 매년 노벨상 시상식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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