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유일 경제강국 부상/새 성장모델 창출 일·EU등 제치고 지도국 위치 확고히지난 90년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선진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했다. 일본과 유럽 정상들은 미국이 경기 침체를 극복하려면 자기나라 경제에서 한수 배우라고 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7년후인 지난 6월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은 톡톡히 앙갚음을 했다.
클린턴은 미국 경제를 『세계에서 가장 탄력적이고 다이나믹한 경제』라면서 『미국의 경제 운용방식, 전략이 어떤 나라의 것보다도 강하며, 새롭게 지구촌 경제를 이끌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 개혁을 단행하고 있는 일본에 미국의 규제완화를 가르치기 위해 대표단을 보내겠다고까지 제의했다.
80년대말 구공산권이 붕괴와 동시에 찾아온 미국의 장기호황은 세기말을 맞아 미국을 또다시 세계의 패권자로 부상시키고 있다. 동서냉전시절 군사적 우위를 통해 달성된 미국의 패권은 양극중 하나에 불과했고, 서방세계에 한정됐다. 그러나 철의 장막이 와해된후 미국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새로이 패권주의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 행정부 관료와 언론들은 요즘 자기나라를 일컬어 「세계 유일의 경제강국」, 「마지막 남은 초강대국」이라는 용어를 자주 쓴다. 더이상 미국을 추월할 국가가 없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흐름이다.
과거의 강대국들도 자국의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롭게 형성된 팍스 아메리카나를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 여건이다. 90년대 이후 경기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과 유럽국가들은 미달러화 강세를 은근히 방조함으로써 국내경제 회복의 탈출구로 이용하고 있다. 러시아 옐친 대통령도 미국이 주도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지원을 올초 선거에 유리하게 활용했다. 중국도 방대한 미국시장을 잃지 않으려고 해마다 워싱턴의 정치권을 상대로 최혜국대우(MFN) 연장을 위한 맹렬한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다.
미국을 철천지 원수처럼 여기던 세계의 반미국가, 반미주의자들도 미국에 대한 반감을 누그러뜨리고, 은근히 손을 내밀고 있다.
지난 5월 이란 국민들은 18년전 호메이니옹이 일으킨 회교혁명 정신을 포기하고 친미주의자인 마드 하타미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한때 미국 대사관을 점거, 미국인들을 인질로 잡았던 이란의 반미주의자들도 미제국주의를 더이상 미워하지 않고 미국의 경제제재가 풀릴 것을 희망하고 있다.
미국과 싸워 통일을 달성한 베트남은 과거의 적과 수교를 단행, 경제 교류의 물꼬를 텄다. 쿠바와 함께 지구상에 마지막 공산국가로 남은 북한이 4자 회담에 응하는 것도 미국의 경제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80년대말 영국 출신의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는 저서 「강대국의 흥망」에서 미국을 16∼17세기에 유럽을 제패한 합스부르크 왕조에 비유한 적이 있다. 중계무역에 의존했던 합스부르크가는 은이 바닥나면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제조업을 바탕으로 한 20세기 미국은 마이크로 칩과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으로 다음 세기 주도권을 굳혀나가고 있다.<뉴욕=김인영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