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정책

[심층 진단] 잇단 대책에도 활력 못 찾아… 공무원 골프 금지 해제도 고민

[소비살리기 머리싸맨 정부]<br>기업 위주 지원 한계… 세부담 경감 등 통해 가계 지갑 열게 해줘야<br>자산가치 하락도 한몫… 주택거래 정상화 등 시급

김중수(오른쪽 세번째)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오전 서울 소공동 한은 대회의실에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하고 있다. 김 총재는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잠재력이 3%대 후반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재기자



"소비를 살리는 방법을 찾으려니 머리가 깨질 것 같습니다. 공무원 골프 금지 조치를 푸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정부 고위당국자가 서울경제신문과의 사석에서 던진 이야기다. 국내 소비시장 회복을 위해서라면 대통령이 암묵적으로 설정해놓은 '금기 영역'까지 깨는 것을 염두에 둘 정도로 정부가 소비 살리기에 사활을 걸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유럽 재정위기 확산 여파로 수출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내수라도 떠받쳐줘야 우리 경제가 순항할 수 있는 탓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국민의 휴대폰, 텔레비전 수신료 부담을 소득공제로 덜어주자고 기획재정부에 제안한 것도 같은 줄기다. 재정부는 일단 난색을 표하고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가계 지출 부담을 줄여줘야 소비 여력이 생긴다는 근본적인 발상에 대해서는 모든 정부 부처가 궤를 함께하고 있다.

사실 정부가 내수 활성화를 고민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6월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장관ㆍ차관을 불러모아놓고 이틀간 내수 활성화를 위한 국정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당시 토론회에서 제안된 아이디어만 해도 무려 170여개. 그 중 정책 과제로 108개가 채택됐는데 이후 104개로 조정, 올해 2월에는 이들 과제의 99.0%(103개)가 완료됐거나 정상 추진되고 있다고 재정부가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정부가 전통시장에서의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해 소득공제를 확대해주고 청년 전용 창업자금 1,300억원을 올해의 예산에 새로 편성한 것도 이들 104개 과제 추진의 대표적 성과였다. 올해 들어서도 박재완 재정부 장관이 이른바 '스몰볼 시리즈'로 명명한 내수 및 투자 활성화 대책이 발표돼 가계의 지갑과 기업의 금고를 열기 위한 군불 때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방대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국내 소비는 좀처럼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월 5.4%의 증가율(전년 동월 대비)을 보이며 반짝했던 소매판매액 증가율은 3~4월 들어 연속으로 1%를 밑돌며 '게걸음'을 걸었다. 소비가 좀처럼 늘지 않자 내수용 소비재 출하량도 2월 10.3%의 증가율(전년 동월 대비)을 보인 직후 곧바로 꺾여 3월에는 4.2% 감소했고 4월에는 1%를 밑도는 미미한 증가율을 기록했다. 출하 물량이 이처럼 늘지 않았음에도 재고는 계속 쌓여 제조업을 포함한 광공업 재고지수는 올해 들어 두 자릿수 증가율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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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각고의 노력을 펼치고 있음에도 내수가 좀처럼 활기를 찾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학계 일각에서는 정부의 내수 활성화 대책이 초점을 잘못 맞췄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청한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소비를 살리려면 가계가 돈을 쓸 수 있도록 수요 측면의 지원 대책이 중심축을 이뤄야 하는데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내수 활성화 대책은 대부분 기업이나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공급 측면 대책이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 지원대책은 미흡하고 기업ㆍ자영업자 지원 대책 일색이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대단한 종합대책을 내놓겠다는 욕심에 중구난방으로 백화점식 대책을 묶어 발표하는 구태를 반복하는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도 "솔직히 경기 활성화 대책이라는 것이 뻔한데 매번 새로운 방안을 내놓으라는 지시는 떨어지니 각 부처가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대충 모양새만 맞으면 견강부회식으로 대책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고백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소비 활성화 대책은 백화점식보다는 한두 가지 파괴력 있는 대책을 중심으로 한 '원포인트식 정책'으로 방향을 잡고 초점도 공급자보다는 수요자 쪽에 맞춰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나 통화 당국이 돈을 푸는 식의 전통적인 수요 부양 정책은 약효를 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도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지금은 돈을 풀어도 국민이 소비하기보다는 빚을 갚는 데 쓰기 쉬워 경기부양 효과가 떨어진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수요 부양 대책은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간접적으로 높여주는 것.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높아진 세 부담을 줄여 이들이 지갑을 열도록 유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산층의 소비심리 위축 이면에는 집값 하락과 같은 자산가치 하락 효과가 도사리고 있는 만큼 주택거래 정상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학계 일각에서는 저소득층에 한해 소비 쿠폰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이는 정부의 재정 부담이 수반되는 사안인 만큼 최악의 경우 꺼내들 수 있는 카드로 미뤄야 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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