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업문화:42/대한전선(재벌)

◎인화바탕 21C도전대응 변신활발/정보통신 등 다각화 2000년 매출 2조 도약/오일쇼크 겪으며 “사원이 주인” 일체감 탄탄/“문제는 스스로 해결”속 최고품질생산 자랑/애로 항상토론 “아래로부터 개선”사풍 충만대한전선그룹은 보수적이다.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매우 꺼린다. 회장도 기업경영과 관련되지 않은 부분에는 가급적 외부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한전선의 이같은 보수성은 지난 83년 가전사업부를 대우에 넘기면서 더욱 심화됐다. 그렇다고 내부분위기가 정체돼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직원들간의 인화는 그 어느 기업보다도 돈독하다. 가전사업정리등 시련기를 거친 직원들은 끈끈한 인간미로 뭉쳐 있다. 「보수적이지만 인간미가 흐르는 기업.」 대한전선을 한마디로 축약하는 말이다. 그래서 대한전선은 남들처름 곁눈질해 무리한 사업확장에 나서기보다는 묵묵히 가업을 잇고 있다. 대한전선은 전선에서만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이라고 자부한다. 대한전선을 아는 사람들은 「전선 하나로 이룬 금자탑기업」이라고 평한다. 경제성장의 동맥을 구축한다는 신념으로 오늘을 일궈낸 대한전선은 한국전쟁이 끝난 55년 「전선보국」의 기치를 내걸며 한국경제성장의 대열에 참여한다. 그룹의 원뿌리는 해방 후 우리나라 공업발전사 초창기를 이끈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인송 설경동씨다. ○문어발식 확장자제 인송은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은 장남인 설원식씨에게, 대한전선과 대한제당은 3남인 설원량 현 그룹회장에게 경영을 맡겼다. 대한방직그룹과 대한전선그룹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대한전선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평범한 격언을 신조로 삼고 있다.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선대회장의 가름침이 기업문화의 저변에 깊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은 남들이 다했던 문어발식 기업확장에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오직 전선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 대한전선은 「드러내지 않는 묵묵함의 미덕기업」이라는 평가가 붙는다. 대한전선이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신념 아래 과욕을 부리지 않았던 것은 과거 가전사업을 할 때 금성사(현 LG전자), 삼성전자등과 경쟁을 벌이던 시대에 겪어야 했던 정신적인 고통에서 비롯된다. 대한전선은 한때 무리수를 둬가면서 남들이 하던 통신, 기계, 화학에 손을 댔다 낭패를 보기도했다. 보수적인 기업성향은 이래서 형성됐다. 전선부문에서 번 돈으로 가전부문을 메꿔나가야 했던 외줄타기 경영을 과감히 헤쳐나온 결단성으로 가장 가능성있는 부분에서 최고품질을 만들어 내겠다는게 대한의 목표다.대한을 겉으로 본 사람들은 고여있는 물이라고 말하지만 그 안을 찬찬이 뜯어보면 대하와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한인들 가슴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전사원이 회사의 주인」이라는 의식은 80년대 오일쇼크의 험한 파도를 넘으면서 형성됐다. 『다가올 위험이 갈수록 강하게 느껴졌다. 껍질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도저히 버텨 나갈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이었다』. 기획실에서 근무하는 한 부장은 위기였던 지난 81년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한다. 이런 어려움이 사원들간의 끈끈한 유대를 강화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 『주인과 나그네를 가장 절감했던 시절이었다. 품질에 대해 항상 문제의식과 개선하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생활하다보니 사원끼리의 협동심도 생기고 회사를 아끼는 마음도 생겨났다』고 한 관계자는 그 시절을 회상했다. 「아픔을 딛고 일어선 사람이 밟는 땅은 더욱 굳어진다」는 격언은 대한전선의 오늘을 함축하고 있다. ○해외투자 나서 보수적인 대한전선그룹도 무한경쟁으로 함축되고 있는 21세기를 대비해 구각을 깨는 변신의 몸짓을 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우량기업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 초고압전력· 광통신, 정보통신 등 유관분야로 사업영역을 조심스레 확장해왔다. 과거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해외투자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확장은 단단한 기반위에 세워진 알짜사업들이라는 점이 바로 대한을 설명한다. 『사업을 모험이라고 말하지만 대한이 하는 일은 위험을 최소화시키고 성공가능성을 최대로 높인 것들이다. 우리는 앞서나간다는 생각보다는 천천히 그리고 생각하며 간다』는 것이 그룹이 세우고 있는 투자방식이다. 거듭거듭 살펴보고 선택해 정보통신을 투자우선대상으로 꼽은 것은 대한의 잠재적인 역량을 알수 있는 대목이다. 대한은 96년 2.5Gbps급 통신장비등을 개발, 다중화·고속화되어가는 통신서비스시장에 대응함으로써 장거리통신망의 대용량 고품질화를 주도하고 있다. 『기업이 가진 역량에는 한계가 있다. 외부의 힘을 빌지 않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면 집중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열번이라도 돌다리를 두드려야 한다』는 것이 설회장의 경영철학이다. 꿈의 통신으로 불리는 광통신사업도 대한의 주도면밀함이 잘 드러난다. 기초원자재가 되는 광섬유사업에 대한 투자부터 최종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술까지 스스로 해결한다는 주의였다. 서울올림픽 통신망설치에 참여함으로써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회사발전에 전종업원을 동참시키는 배려도 주위에서 대한을 부러워하는 대한만의 문화다. 대한은 80년대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경영개선팀과 목표달성을 위한 비상대책회의를 운영한 적이 있다. 경영개선팀은 경영의 조직화를 목적으로 자재, 공정, 인력, 관리 등 4개부문의 과장급이상 15명으로 팀을 구성했다. 여기에서는 각 공정의 실천사항을 진단하고 각 사업부의 중역들로 구성된 비상대책회의에 실천사항을 건의했다. 비상대책회의는 계획된 목표의 진행상황이나 애로요인 등을 찾아 매월 2번씩 열리는 전체중역회의에 올렸다. 이러한 과정은「아래로부터의 개선」과 「사원부터 중역까지」라는 일체감을 형성했다. 『회사생활에서 느낀 사소한 것들까지도 서로 토의하고 그 결과를 상부에 보고했는데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로 채택돼 다시 전체사원에게 전달됐다. 그 순간 내가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구나하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는 한 임원의 말에서 참여를 중시하는 그룹문화를 엿볼수 있다. ○올림픽 통신망 설치 대한전선은 95년을 계기로 매출 1조원을 넘어서면서 비로소 그 역사에 알맞는 크기를 달성했다. 이해 달성한 매출 1조원의 의미는 간단하지 않다. 그중 2천억원이 스테인레스에서 벌어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정보통신분야 진출도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전선사업을 영위하면서 관련된 부문으로의 영역확장이었다. ○95년 매출 1조 달성 그에 반해 스테인레스는 소재사업에 대한 새로운 시도. 이는 사풍의 변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한 단면으로 「안정과 안전」에서 「진취적 도전」으로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수 있다. 94년 삼양금속으로부터 인수한 스테인레스사업에 대한은 냉간압연기와 광휘소둔로를 추가로 투자, 생산능력을 12만톤에서 18만톤으로 늘렸다. 고부가가치제품인 초극박판을 생산하는 압연기를 추가로 설치, 운영하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95년에는 삼양금속으로부터 알루미늄사업도 인수했다. 특히 알루미늄에서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카이저사와 기술제휴해 최신기술인 직접주조방식을 갖췄다. 설원양 그룹회장은 『알루미늄사업진출과 스테인레스사업 및 정보통신부문의 집중투자로 세계속의 초우량전선, 정보통신, 소재의 종합메이커로 발돋움할 전망이며 오는 2000년대에는 매출 2조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대한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가전사업을 정리한 뒤로 최근처럼 활발한 변화가 일어난 적이 없다』라고 말하는 대한인들의 말은 새로운 시대를 맞기 위한 스스로의 변신이 느껴진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열심히」라는 구호와 「스스로 해결한다」를 결합해 「요란하지 않지만 변화의 물결이 밀려와도 스스로 헤쳐나간다」는 대한의 구호가 21세기에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 지 관심거리다.<박형준 기자> ◎전선외길 42년 대한전선 신기록들/61년 공중통신용 연피케이블 국산화/65년 4.4㎜케이블 76년 표준케이블/81년 원자력발전소용 케이블 양산/93년 전선전품목 ISO9001인증획득 대한전선은 전선업계에서는 「최초」기록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전선외길을 고집하며 기술개발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59년 용동압연기를 국내최초로 설치했으며 61년 공중통신용 연피케이블 국산화도 대한에서 처음 이루어졌다. 국가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행하면서 64년 전선류 KS표시도 제일 먼저 받았다. 65년에는 4.4㎜세심동축케이블을 국내 최초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회사를 공개한 68년은 스탈페스케이블을 우리기술로 만들어낸 원년이었다. 33킬로볼트 CV케이블, 70년 345킬로볼트 강심알루미늄연선, 76년 표준동축케이블 생산 등도 국내 전선사에 처음으로 기록됐다. 154킬로볼트 O·F(Oil Filled)케이블도 그렇고 광화문과 중앙전화국을 잇는 광케이블도 대한이 이뤄냈다. 80년대 들어서도 신기록행진은 계속돼 81년 원자력발전소용케이블이 처음 만들어지고 82년에는 154킬로볼트 P·O·F 케이블 선로교체작업 완성은 세계에서도 처음 이룬 것이었다. 354킬로볼트 O·F케이블 국내 최초 기록이 89년의 일이며 93년에는 전선업계 최초로 전선 전품목과 계전 적산전력계에 대해 ISO 9001 인증을 받았다. 최근의 일로는 안양공장에 3백억원을 투자해 5백킬로볼트 이상의 초고압케이블을 생산할 수 있는 수직연속압출가교설비 타워를 만들었다. 이 타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1백25m를 자랑한다. 대한의 이런 기록들은 전선산업의 개척자로 자임해 온 역사를 그대로 대변한다. 어디까지 이같은 신기록행진이 이어질까. 이같은 기록을 세우는 과정이 곧 대한의 앞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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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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