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Story] 이인찬 신동아건설 대표

'90년대 랜드마크' 63빌딩 자부심 안고 워크아웃 파고 넘을 것<br>40년토목 외길… 현장서 잔뼈 굵은 명장<br>직원과 고스톱 함께 치며 허물없이 지내<br>승부사 기질이 역경 이겨낸 큰 원동력<br>자식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회사 만들 것




직원들과 고스톱 치는 대기업 사장님 '깜짝'
[CEO&Story] 이인찬 신동아건설 대표'90년대 랜드마크' 63빌딩 자부심 안고 워크아웃 파고 넘을 것40년토목 외길… 현장서 잔뼈 굵은 명장직원과 고스톱 함께 치며 허물없이 지내승부사 기질이 역경 이겨낸 큰 원동력자식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회사 만들 것

김상훈기자 ksh25th@sed.co.kr
































도곡동 타워팰리스(2002년ㆍ69층), 부산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2011년ㆍ80층)를 비롯해 건립 중이거나 예정인 잠실 롯데슈퍼타워(123층), 용산 국제업무지구 트리플원(111층).

불과 10여년 전에만 해도 유명 해외도시에서나 봐왔던 마천루의 대역사(大役事)가 국내 곳곳에서 숨가쁘게 이뤄지고 있다. 문명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끊임없이 하늘과 가까워지고자 하는 속성을 가진 것이 바로 건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마천루 경쟁 속에서 지난 1985년 준공된 후 지난 17년 동안 한국 초고층 빌딩의 대명사로 불리며 꿋꿋이 자리매김한 건물이 있다. 바로 63빌딩이다. 남산보다 1m 낮은 해발 265m로 준공 당시만 해도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63빌딩은 초속 30m 안팎의 태풍이나 리히터 규모 5의 지진이 닥쳐도 좌우로 60㎝ 움직이며 견딜 수 있도록 지어졌다. 당시의 최첨단 기술을 총망라한 63빌딩을 지은 업체가 바로 신동아건설이다.

17년간 대한민국 랜드마크의 위상을 지켰던 63빌딩과 달리 정작 신동아건설은 부침을 많이 겪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옷로비 사건'으로 그룹이 공중분해 되면서 첫 번째 위기를 맞았다. 이후 인수합병(M&A)을 통해 재기하면서 2000년대 중반 옛 건설 명가의 위상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다시 금융위기와 부동산 경기침체라는 두 개의 큰 '파고(波高)'를 넘지 못하며 결국 2010년 워크아웃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사옥에서 만난 이인찬(65ㆍ사진) 신동아건설 대표는 "기업생존과 경영정상화라는 한꺼번에 쫓기 힘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고 있다"며 "자식들이 '우리 아빠 신동아 다녀'라고 자랑할 수 있는 기업이 될 수 있는 바탕을 내가 다질 것"이라며 경영정상화를 위한 포부를 밝혔다.

이 대표의 삶은 우연찮게 신동아의 역사와 많이 닮아 있다. 진흥기업 부사장으로 사업 일선을 진두지휘하던 2007년. 그는 청천벽력 같은 위암 선고를 받게 된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니 원망스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먼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는 감정에 빠져 좌절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이기지 못하면 내 존재가치마저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바로 빨리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다행히 조기 발견된 것이어서 힘들기는 했지만 단시간 내에 이겨낼 수 있었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빠르게 역경을 이겨낸 데는 이 대표가 가진 승부사 기질도 한몫했다.

"바둑을 두더라도 절대 지려 하지 않습니다. 과욕과 승부욕을 구분할 줄 안다면 승부욕이야 말로 내 자신을 이겨내고 발전시키는 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됩니다."

삶에서 가장 큰 파고를 넘어선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렇게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 그는 2008년 신동아건설 대표에 취임하며 바닥을 알 수 없이 곤두박질치던 건설업황 속에서도 위기에 빠진 회사를 이끌며 '명장(名將)'의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실제로 워크아웃에 접어든 다음해인 2011년 신동아건설은 120억원의 흑자를 이뤄냈다.

경험도 경험이지만 싸움은 전략이 있어야 이길 수 있는 법.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이 대표는 직원들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지금의 어려움을 시장 탓으로만 돌릴 것은 아닙니다. 돈이 되는 주택사업에 집중하는 성장일변도의 전략 때문에 기업 포트폴리오 균형이 무너져 우리 스스로가 외부 시장의 충격을 견디지 못한 것입니다. 워크아웃 회사 중에서 신동아가 수주도 하고 좀 괜찮다는 이야기를 조금씩 듣는데 거기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위를 봐야 워크아웃을 졸업할 수 있습니다."

그는 유독 '질서'를 강조한다. 1974년 동양건설진흥에 입사한 뒤 신성건설ㆍ진흥기업을 거친 40여년 토목 외길을 걸어오면서 그는 누구보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건설인이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은 느슨해지면 어느 때라도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군대 조직 이상으로 명령체계가 서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승부사 기질에 일사분란한 움직임만을 강변하는 빡빡한 리더만은 아니다. 신동아건설은 한 달에 한 번 임원 중요 전략회의가 끝나면 저녁식사 뒤에 '고스톱 판'이 벌어진다. 회사 임직원을 똘똘 뭉치게 하기 위해 이 대표가 펼치는 독특한 감성경영의 한 단면이다.


"고스톱을 치면서 딱딱한 회의 석상에서 하지 못했던 얘기들도 나누고 서로의 개인사를 풀어놓기도 하면서 유대감을 다져요. 자칫 직원들과 멀어질 수 있는 대표이사로서 밑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평소에도 노력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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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타고난 승부사 기질에 부드러움을 더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렸을 적 누군가에게 들어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은 격언의 영향이 컸다. '좋은 친구를 얻으려면 먼저 좋은 친구가 되라.'

"이 말을 스스로도 지켜왔고 자식들도 그렇게 키웠다"는 그는 "최고경영자(CEO)가 임직원의 좋은 친구가 돼야 회사가 신뢰를 바탕으로 똘똘 뭉쳐 워크아웃이라는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40여년 토목 외길을 걸어왔던 만큼 건설업에 대한 애착도 남달랐다. 특히 1986년 착공해 1988년 1단계 공사가 마무리된 평화의 댐 현장을 설명할 때 그의 눈빛은 마치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한 열정이 가득했다.

"시급한 돌관공사(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급하게 하는 공사)라 6개월 정도 철야의 연속이었죠. 현장 직원들이 기거할 사무실도 지을 시간이 없어서 천막생활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당시까지만 해도 접할 수 없었던 설계를 접해보기도 하고 난관을 헤쳐나가며 하나하나 만들어 간다는 보람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을 했습니다."

애착이 큰 만큼 그는 최근 건설, 그리고 토목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선에 큰 아쉬움을 토로했다.

"건설이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한 부분이 많죠.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건설이라고 하면 부실시공ㆍ비자금 등을 떠올립니다. 건설인들 스스로가 상당 부분 책임져야 하지만 정책입안자들의 탓도 적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경제발전에 기여한 만큼에 걸맞은 대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신동아건설이 직원들 자식들이 자랑스러워 할 만한 건설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스스로 기꺼이 그 밑거름이 되겠다고도 했다. 이를 위해서는 2014년 워크아웃 졸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도 덧붙였다. 하지만 워크아웃 중에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건설사가 잇따를 만큼 시장상황은 만만치 않다.

"못하는 것은 과감히 버리고 우리가 잘하는 것을 특화 시키면서 한발한발 나아갈 것"이라며 워크아웃 졸업을 자신하는 이 대표. 수많은 역경을 헤쳐 나온 그에게서 갈림길에 선 신동아호의 미래가 엿보였다.

● 이인찬 대표는▦1947년 서울 ▦1967년 경기상고 졸업 ▦1974년 한양대 토목공학과 졸업 ▦1974~1975년 동양건설진흥 ▦1975~2005년 신성건설 전무 ▦2005~2008년 진흥기업 부사장 ▦2008년~ 신동아건설 대표

■ 신동아건설 뼈 깎는 자구노력조직 슬림화·SOC 공공수주 총력… 경영 정상화 줄달음민간주택 중심 수주 구조 탈피군사시설 등 틈새 공략도 주효신동아건설이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간 것은 2010년 7월이다. 대부분의 건설사가 그랬듯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빠지고 집 값 하락이 가속화되면서 지급보증을 섰던 주택 프로젝파이낸싱(PF) 사업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그해 시공능력평가순위 20위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승승장구하던 회사는 막대한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결국 회사는 워크아웃에 돌입했고 채권단 협의를 통해 1조3,000억원 규모의 기존 채무 상환을 2014년까지 유예 받고 400억원의 신규 자금을 받게 됐다.

신동아건설은 주채권 은행인 우리은행 등 채권단과 경영정상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후 워크아웃 졸업을 최대한 앞당기기 위한 자구노력을 계속해왔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한 조직 슬림화에 나섰고 현금 흐름이 나쁜 사업은 과감히 정리했다. 민간 주택 시장에 몰린 수주 구조를 개선해 주택 비중을 줄이고 사회간접자본(SOC) 등 공공 수주에 전념했다. 경영방침도 "기업 생존과 조기 경영정상화"로 바꾸고 생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이 같은 노력에 회사는 점차 경영 정상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올해 초 1,000억원 규모의 국방부 정보화시설 사업과 울산 반구동 공동주택, 괴산 대제 산업단지 등을 신규 수주하며 경영정상화의 청신호를 켰다. 9월에는 한 달 동안 3,000억원이 넘는 수주액을 올려 업계를 놀라게 했다. 화성도시공사가 발주한 화성시 화산동 주민복지센터ㆍ공원 조성 공사를 일관입찰방식(턴키)으로 수주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인천서창2지구 1블록 8공구와 김포한강 Aa-4블록 5공구 등 아파트 건설공사 2건도 추가로 수주했다. 세종시 공동주택용지 1-4생활권 L6블록을 분양 받아 내년 4월께는 574가구 규모의 아파트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 같은 성적을 바탕으로 신동아 건설은 2014년 말 예정인 워크아웃 졸업일을 최대한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민간 주택 비중을 더욱 줄이고 산업단지 개발과 같은 SOC 사업군 발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학교ㆍ군사시설 등 임대형민자사업(BTL)과 같은 틈새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진현기 신동아건설 건축본부장은 "신동아건설은 2006년부터 국방부에서 발주하는 BTL사업에 관심을 갖고 회사의 성장 동력으로 삼아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공사를 마무리 지은 서울 대방동 공군관사 '파밀리에 하늘마루'의 경우 BTL사업의 전형을 깨고 학생을 위한 독서실, 입주민을 위한 근린생활시설 등을 갖추는 등 일반 아파트와 다르지 않은 커뮤니티시설을 제공해 입주민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올해 신동아의 수주 예상 금액은 7,500억원 안팎으로 올해 초 목표금액 9,300억원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건설 시장 침체의 골이 깊어 공공 수주 자체가 전무한 다른 중견 건설사에 비하면 선방이었다는 평가다. 경영정상화의 갈림길에서 중견 건설사를 대표하는 신동아건설의 다음 행보를 업계가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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