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한국이 IT강국이라는 허상

위정현 <중앙대교수ㆍ경영학>

일본은 지난 90년대를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른다.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는 데에는 경제적으로 불황이었다는 현실도 작용했지만 더 중요하게는 정보기술(IT)이라는 첨단산업에 적응하지 못한 채 미래에 대한 비전과 자신감을 잃어버린 데 있었다. 그런데 ‘잃어버린 10년’을 초래한 이유가 정작 그들 자신의 ‘오만함’ 때문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버블에 취했던 日경제의 교훈 80년대 후반 일본경제는 버블이라는 장밋빛에 취해 있었다. 당시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일본 열도를 팔면 미국을 송두리째 사들일 수 있다는 계산까지 나오고 있었다. 샐러리맨들은 매일 밤 고급 레스토랑에서 회식을 하고 비싸기로 유명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비용은 다음날 고스란히 회사가 영수증 처리해주었다. 정말이지 좋은 시절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일본경제에 패해 제조업이 공동화돼간다던 미국에서는 소리 없이 기업의 IT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 기업은 수면하에서 IT라는 새로운 기술을 결합시켜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90년대 들어 일본경제의 버블이 꺼지면서, 그리고 일본기업이 IT 도입에 뒤처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는 이미 게임이 끝난 상태였다. IT 산업에서 일본은 완패한 것이다. 이런 일본경제의 뼈아픈 경험이 한국의 디지털콘텐츠 산업에서 재현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필자는 일본의 도쿄대학과 공동으로 온라인게임을 교육에 활용하는 세계 최초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실험에 협력할 일선의 초ㆍ중ㆍ고를 방문해 학교의 컴퓨터 시설을 점검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발견됐다. 방문했던 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PC에서 온라인게임이 작동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많은 PC가 이미 퇴물이 돼버린 윈도98, 심지어는 95를 그대로 쓰고 있거나 CPU 성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제품, 또는 메모리가 부족해 작은 용량의 게임조차 기동하지 못했다. 전산실의 서버 역시 문제였다. 겨우 20, 30여명의 인원이 접속해도 서버가 다운되는 경우가 많아 안정적으로 게임에 접속해 실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500메가 정도의 작은 게임 프로그램을 다운로드받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조사에서 학교의 인터넷 인프라는 90년대 후반 김대중 정부 때 보급된 후 제대로 관리되거나 업데이트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즉 통계적으로만 잡히는 학교의 PC 보급대수 이면에 이런 충격적인 현실이 은폐돼 있는 것이다. 한국의 희망은 현재의 10대 청소년에 있다. 특히 한국이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디지털콘텐츠 산업을 유지할 수 있는가는 오직 이들에게 달려 있다. 현재의 20대 대학생조차 디지털콘텐츠 산업에 대한 감각이 취약하다. 예를 들어 사이버 공간에서 아바타와 자신에 대한 일치도를 조사해보면 대학생은 현저히 그 수준이 떨어지지만 초등학생은 현실의 자신과의 일치도가 대단히 높다. 디지털콘텐츠 교육현장서 방치 대학생들은 청소년들의 톡톡 튀는 감성과 색채, 디자인 감각을 따라가지 못한다. 사이버상의 콘텐츠에 대한 감각에서 20대조차도 이미 ‘보수세력’이 돼 있는 것이다. 이런 한국의 꿈인 10대 청소년들이 가장 중요한 디지털콘텐츠 교육현장에서 방치되고 있다. 현재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기술에서 또다시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는 말이 들린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인터넷 인프라의 후진국이던 일본에서 벌써 차세대 인프라인 광케이블(FTTH)에서 소리소문 없이 400만가구 이상의 보급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산업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 한국 역시 디지털콘텐츠 분야에서 영원한 승자일 수 없다. 이제 우리가 IT 강국이라는 ‘찬사’에 취해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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