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은 오는 17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 한ㆍEU 자유무역협정(FTA) 동의안과 세이프가드 이행법안을 통과시킬 것이 유력시된다. 그렇게 되면 한ㆍEU FTA 잠정발효를 위한 EU 내부 절차가 마무리된다. 반면 우리의 경우 지난해 서명 직후인 지난해 10월25일 정부가 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했지만 전혀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미 FTA 경우에도 미국은 EU를 의식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지만 우리는 국회 다툼으로 비준동의안 처리는 요원해 보이는 상황이다. 자칫 우리 경제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거대경제권과의 FTA에 대해 스스로 발목을 잡을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서진교 대외정책연구원(KIEP) 연구조정실장은 "EU와 미국 모두 속도를 내는 상황이어서 이 상태로 계속 머뭇거려서야 되겠느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단계적으로 한ㆍEU FTA 비준동의안을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은 우리 국회에=EU와 미국이 각각 한국과의 FTA에 대한 의회비준에 속도를 내면서 공은 우리에게 넘어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엄밀히 말하면 '공은 우리 국회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정부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서둘러 진행하고 있고 지금부터는 정치적 프로세스(절차)"라고 말했다. 한ㆍEU FTA는 7월1일 잠정발효로 예정돼 있어 6월까지 비준동의안 처리와 관련 법률 제ㆍ개정 등의 국내 절차가 마무리돼야 한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국회에서는 아직 외교통일통상위원회 상정도 되지 않은 상태다. 한미 FTA는 현재 딱히 설정된 데드라인은 없지만 미 행정부가 의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한 뒤 90일로 정해진다. 이르면 3월에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시급히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 측의 경우 본협상 비준 동의안은 이미 소관 국회 상임위를 통과해 본회의에 계류돼 있고 추가협상 비준안은 8일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대통령 재가와 서명 등의 절차를 거쳐 조만간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미국과 EU는 협상 당시부터 상호 간 패리티(균형)를 요구하며 서로를 견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는 발효를 앞두고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통상전문가들은 미국이 7월 한ㆍEU FTA가 발효되면 자국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염려하고 있어 한ㆍEU FTA 비준동의안부터라도 우선 처리하면 대내외적으로 긍정적인 효과와 명분을 동시에 가져올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단계적 처리냐, 패키지 처리냐 갈등=정치권에서 한ㆍEU FTA 비준안에 대해서는 이견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다만 추가협상 내용까지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 한미 FTA 비준안과 맞물려 한ㆍEU FTA 비준안 처리가 덩달아 늦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라당은 한ㆍEU, 한ㆍ페루, 한미 FTA 비준안을 각각 순서대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옥임 한나라당 원내대변인은 "한나라당은 한ㆍEU, 한ㆍ페루, 한미 FTA 동의안을 순리와 국익, 법 절차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면서 "한미 FTA의 경우 국내 자동차 업계는 물론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60%가 찬성했다"며 야당을 압박했다. 특히 한나라당 지도부는 7월 양국 발효를 앞두고 있는 한ㆍEU FTA 비준안의 경우 상반기 본회의 처리를 목표로 삼고 있으며 한미 FTA 비준시기에 대해서는 미국의 의회 비준상황에 맞춰가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한미 FTA 추가협상결과에 강하게 반대하면서 한미와 한ㆍEU FTA 비준안을 함께 묶어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 외통위 소속 박주선 민주당 의원은 "한ㆍEU, 한미 FTA 모두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지에 대해 확실히 검증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유럽의회가 통과시켰다고 해서 크게 개의치 않겠다"고 강조했다. ◇한미 FTA 어떻게 풀어갈까=가장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이는 것은 한미 FTA다. 비준처리에 대해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처리 방안을 놓고 이견이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추가 협상 전인 2009년 4월 외통위를 통과해 본회의로 넘어간 당초 비준안은 그대로 살려둔 채 추가한 부분만 외통위에서 논의해 함께 처리할 계획이다. 한나라당이 단독 처리했을지라도 이미 소관 상임위에서 처리한 원안까지 야당과 다시 토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제처에서도 이 같은 취지로 유권 해석해 한나라당에 전달한 바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소속인 남경필 국회 외통위원장을 비롯해 외통위 한나라당 간사인 유기준 의원은 부정적이다. 유 의원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미 FTA 추가 협상안만 상임위에서 논의하자는 의견과 전부 다시 논의하자는 입장이 팽팽하므로 처리 방안은 좀 더 이야기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남 위원장은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한미 FTA 비준안을 처음부터 다시 상임위에서 따져봐야 하며 물리적인 강행처리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더구나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도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각종 안건의 강행처리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