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가옥의 담장을 오르고 있는 담쟁이덩굴, 들녘에 스산히 서 있는 수숫대, 산 속의 동료들과 떨어져 몇 그루씩 어울려 장면을 연출하는 나무들. 그리고 나리꽃·맨드라미가 은근히 폼을 잡는가 하면 민둥산 위에 자리잡은 둥근 달이 정겨우면서도 왠지 쓸쓸하다.한국화가 강미선의 작품은 독특한 질감과 수묵을 이용해 바로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물들을 이야기한다.
4월 4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스페이스 서울(02~720-1524)과 종로구 관훈동 학고재(02~739-4937) 두 곳에서 초대전을 갖는 강미선의 작품은 보는이로 하여금 「마음의 풍경」으로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그의 작품에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풍경도 있고, 정물도 있다. 목기·과일·화병에 꽂힌 꽃가지와 토속적 화훼 등은 동양화에서 말하는 「기명절지」(器皿折枝)의 경지를 보여준다. 「기명절지」란 꺾여진 꽃가지, 과일 등의 절지와 귀중한 그릇을 조화롭게 어울리게 하는 것을 말한다. 옛 여인네 특유의 감성과 취향이 드러난 규방문화를 연상시킬 정도로 강미선의 작품은 사소한 것들에 대한 은근한 애정이라고나 할까.
작가의 작품이 특히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유는 그 독특한 질감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결이 거친 닥종이를 몇 차례 발라올리면서 두드리기도 하고, 말리기도 하여 표면 자체가 불규칙한 작은 돌기들로 이루어진다. 마치 투박한 화강암의 표면같기도 하고, 흙으로 얽어놓은 시골집의 담을 연상시키도 한다.
오광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그의 작품에 대해 『소박하고 담백한 인상에못지않게 이상하게 우리를 끄는 매력은 마치 묵은 된장맛 같은 텁텁하면서도 오랜 뒷맛에서 연유한다』고 말했다.
강미선은 홍익대를 졸업하고 그동안 여섯 차례의 개인전을 가진바 있다.
이용웅기자YYONG@SED.CO.KR
입력시간 2000/03/28 1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