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계의 사설/5월 20일] 부시 대통령의 구걸 외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지난 16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국왕을 만나 기름 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산유량을 늘려줄 것을 애걸하라고 조언한 건 누구였을까. 부시 대통령에게 그를 해고하라고 충고하고 싶을 뿐이다. 대통령은 외교 석상에서 상대방에게 공개적으로 무언가를 부탁해서는 안 된다. 이는 부탁을 들어줄 것이라는 언질을 미리 받아놓지 않은 이상 외교 관례상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원칙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미 지난 1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를 방문해 똑같은 부탁을 했다가 거절당했다. 그런데 이번에 사우디 국왕은 더욱 무뚝뚝했다. 알리 알 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석유가 필요하면 사시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부시 대통령의 굴욕은 올 초 증산 요구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더 안타까운 이유는 미국 정부가 미리 사우디아라비아 왕족들에게 수십억달러어치의 무기를 팔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미국 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미 행정부는 또 사우디아라비아가 ‘그들의’ 에너지 수요를 위한 민간 핵원자로 개발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그래야 사우디아라비아 국내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켜 더 많은 원유를 수출할 수 있다는 논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이 같은 논리가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여타 이슬람 국가들의 핵연료봉 보유도 눈감아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원유를 생산해낼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나이미 장관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몇 개월 동안 하루 생산량을 30만배럴씩 늘려 총 170만배럴을 증산했다. 그리고 아직 땅속에 묻혀 있는 원유는 대부분 정제가 어려울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최근의 고유가는 공급불안 때문이 아니라 달러 약세 탓이라는 얘기다. 유럽에서는 미국처럼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지 않았다는 게 그 증거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남의 나라에 가서 구걸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이 정말 본인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다면 사우디아라비아보다는 현재의 원자재가 상승을 빚어낸 벤 버냉키 연방준비위원회(FRB) 의장을 찾아가볼 일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