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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직접 사죄의 뜻을 나타내고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대대적 혁신 의지를 밝힘에 따라 삼성그룹 전반에 쇄신의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의 진원지가 된 삼성서울병원은 물론 엘리엇매니지먼트와의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인 삼성물산·제일모직, 상황에 따라서는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위기관리 능력 및 경영 실태를 집중적으로 점검하는 '경영진단' 조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삼성 안팎의 분석이다.
아울러 차제에 위기관리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하고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과 계열사 간 소통의 문제는 없는지 등도 정밀 점검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문제가 있는 곳은 쇄신의 칼을 대고 필요할 경우 조직과 인적 쇄신도 실시할 것으로 분석된다.
한 전직 삼성 임원은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샅샅이 찾아 그 뿌리를 뽑는 게 삼성의 오랜 기업문화"라며 "인적 쇄신을 포함한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이재용 체제'를 본격화하는 움직임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 개혁 강한 의지=이 부회장의 이날 대국민 사과는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당초 재계에서는 메르스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된 후 이 부회장이 사과와 재발방지 방안 등을 담은 종합대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하루라도 빨리 사과의 뜻을 밝히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겠다"는 뜻을 그룹 수뇌부인 미전실에 전달하면서 삼성의 대응이 빨라졌다. 이 부회장은 이날 회견문에서도 사과의 뜻과 동시에 혁신을 통한 사태해결의 의지를 수차례 강하게 드러냈다.
삼성 내부에서는 첫 번째 혁신의 타깃이 어디가 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회견문에서 "병원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겠다"고 밝힌 만큼 의료 시스템 전반에 대한 수술이 이뤄질 것은 확실하지만 다른 계열사들에 어디까지 불똥이 튈지가 관건이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1년 넘게 지배구조 재편작업이 숨 가쁘게 진행돼오면서 계열사 간 유기적이면서도 체계적인 대응체제가 부족해진 것 같다"며 "'시스템의 삼성'이라는 말에 어울릴 정도로 제대로 된 혁신이 뒤따를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같은 줄기에서 미전실의 위상이 어떤 식으로든 과거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무산, 엘리엇의 삼성물산 공격, 삼성서울병원 방역체계 구멍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에서 미전실이 일사불란하게 그룹의 역량을 한데 모으는 것이 다소 부족하지 않았느냐는 일종의 자기반성이다. 삼성 관계자는 "계열사로 사람을 내려보내 경영진단을 하는 주체가 미전실인 만큼 그룹의 시스템 수술작업 역시 미전실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은 아버지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쓰러진 후 1년 넘게 그룹의 인사 및 조직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지만 앞으로 본격적인 자기 색깔 입히기에 돌입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바이오 산업 육성 계기 되나=이번 위기는 삼성의 차세대 성장동력인 의료 부문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이 부회장은 이날 회견에서 "감염 질환에 대처하기 위해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이 본격적으로 바이오 산업 육성에 나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은 메르스 사태 이전부터 바이오·헬스 산업과 이를 기반으로 한 전자통신기술의 융합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지목해왔다. 실제로 삼성바이오로직스 같은 바이오 계열사는 제약시장에서 일부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내부의 의료기기사업 부문은 만성적자에 시달리며 전체적인 큰 틀에서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삼성서울병원 등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진다면 상황이 확 달라질 수도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삼성의 바이오 산업에서 일종의 '테스트베드'이자 전진기지 역할을 담당해야 할 곳이다. 삼성 관계자는 "그동안 의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된 병원 개혁과 더불어 바이오 산업 전반에 대한 투자계획 등이 내부적으로 확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